"대선 상관없이"라더니.. 민주당엔 또 '다음에' 기류

지지부진한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 논의.. '강행처리는 부담'이라며 미적미적

"정치가 바뀌어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이 먼저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치를 바꾸겠습니다. 민주당부터 반성하고 변화하겠습니다. 민주당의 명운을 걸고 정치를 바꾸겠습니다." - 2월 27일 '국민통합 정치개혁'을 위한 더불어민주당 의원 결의  내용이다.


이것이 겨우 한 달여전이었다.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반드시 실천할 것을, 국민 앞에서 엄숙하게 결의하고 약속 드립니다"라는 말까지 보탰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민주당부터" "명운을 걸고"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반드시 실천"이라던 이야기들과는 거리가 멀다. 4월 1일 오전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윤호중 비대위원장도, 박지현 비대위원장도 '정치교체'를 말했지만, 갈 길은 아득하다.


▲3월 28일 국회 본관 계단 앞에서 소수 정당과 시민단체 대표들이 다당제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는 대선 당시 '국민통합 정치개혁'을 결의하며 실천방안 중 하나로 지방의원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약속했다. 또 최대한 속도를 내서 6.1 지방선거 기초의회 단위부터 이를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3월 24일 회의를 끝으로 굳게 닫혀 있다. 여야가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놓고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뿐 아니라 정의당,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등 진보성향 정당들은 모두 다당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기초의회부터라도 거대 양당 독점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대선에서 패하고 나니까 민주당 2중대를 육성해서 지방의회 기득권을 계속해 가지겠다는 꼼수(김기현 원내대표)"라거나 "지방선거가 임박한 상황에서 선거구제를 정하는 게 어렵다는 당내 공감이 있다(이준석 대표)"며 반대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시간은 민주당 편이 아니다. 샅바싸움이 길어질수록 여야가 합의점을 찾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 결과 중대선거구제 도입이 무산된다면, 민주당은 '또 약속을 안 지켰다'는 비판을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머뭇거리고 있다. 지도부는 '여야 합의 없이 게임의 규칙을 바꿀 수는 없다'며 중대선거구제 도입 강행이 부담스럽다는 분위기다. 이미 '4월 5일 본회의 처리'는 어렵다는 결론도 내렸다.


민주당 관계자는  "4월 5일 통과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며 "그래도 4월 중순까지만 처리하면 이번 선거에서 할 수 있다. 아직까지 기회는 남아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아마 4월 5일까지 안 될 것"이라며 "절차적으로 쉽지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민의힘이 발목 잡으면 우리는 처리할 수 없다"며 "(정의당과 함께 정개특위에서 통과시키더라도)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상정할지가 불투명하다"고 덧붙였다.

지켜보는 이들은 낙담하고 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지도부의 의지가 확고한지 사실 모르겠다"며 "정개특위는 지금 소위도 안 잡히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그냥 눈치만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물밑 협상을 하다보니까 우리가 고생하는 건 하나도 티가 안 난다"며 "(지도부는) 왜 이렇게 뭉개는 것인지... 이건 진보와 보수, 개혁과 반개혁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우리가 약속했고, 민주당의 노선과 철학의 문제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의원은 "당론 채택하고, 언론에는 '대선 패배해도 꼭 한다'고 그랬던 당이 어떻게 이러냐"며 "(의총에서) 어떤 의원은 '정의당에 구애하려고 했던 것 아니냐'더라"고 전했다. 의총 당일 부동산세제와 중대선거구제를 동시에 다룬 탓에 지역 일정 등으로 바쁜 의원들은 초반부터 줄줄이 회의장을 떠났다. 이 의원은 "논의 내용은 중구난방이었고, 다들 크게 관심 없는 눈치"라고도 했다.


한 중진 의원은 "빨리 해야 한다.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며 "국민들이 민주당을 뭘로 보겠냐"고 말했다. 그는 "국민들과 약속했던 정치개혁 과제를 실천하고, 국회법도 과감하게 정리하는 일 등을 해야 하는데 의원들도 자기 이해관계만 따지고 있다"며 "이대로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한다. 우리가 달라진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지... 당에 아무 반성이 없다"고 우려했다.


또다시 '다음에'를 말하려는 민주당의 기류를 보다 못한 시민사회계는 움직이기로 했다. 정치개혁공동행동 등 전국 880여 시민사회단체들은 4월 4일 국회에서 '지방선거 선거제 개혁과 다당제 정치개혁 촉구 시민사회단체 원탁회의'를 개최한 뒤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선거제 개혁 입법을 촉구하는 한편, 정개특위 활동이 끝나더라도 관련논의를 이어갈 범국민기구 설치 등을 제안할 예정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이탄희 의원 등이 농성 등 대응 방안을 고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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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