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군웅들의 성장-2

김경한 작가


중평5년(188년) 2월, 혜성이 나타나 자궁1)을 범했다.

황건적의 잔당인 곽대 등이 하서군 백파곡(白波谷)에서 일어나 태원군과 하동군을 약탈했다. 이들을 백파적이라고 불렀다. 삼월에는 북방 오랑캐인 도각호(屠各胡)가 병주를 공격해 병주자사 장의를 죽였다.

태상2) 유언(劉焉)이 왕실에 변고가 많은 것을 보고 건의했다.
“사방에 병사들이 일어나 도적질을 하는 이유는 자사의 위엄이 무겁지 않기 때문입니다. 민심이 이반될 정도로 자격이 없는 사람을 임용하니 위엄이 없어 난을 금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먼저 목백제도를 개선하여 청명한 이름이 있는 조정의 중신들을 선발하여 그 직책을 수행하게 해야 합니다.”

조정에서는 량주자사 경비, 병주자사 장의 등이 연속해서 반란을 일으킨 도적들에게 살해되었으므로 이 의견을 받아들여 황완을 예주목, 유우를 유주목, 유표를 형주목, 유언을 익주목, 가종을 기주목으로 임명했다.

이들은 조정에서 구경이나 상서를 지낸 중신들로 모두 청렴하기로 이름 높은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유우, 유표, 유언은 모두 비록 촌수가 멀기는 했지만 황실의 종친이었다. 주목의 지위가 중요하게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3).

유언이 이런 건의를 한 까닭은 장차 세상이 크게 어지러워질 것이라 여겨 난을 피할 겸 스스로 가장 먼 오지인 교지목(交趾牧)으로 내려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익주 광한군 출신인 시중 동부는 개인적으로 유언과 친했다. 그가 유언에게 익주로 갈 것을 권했다.
“경사에 장차 난이 일어날 것입니다. 익주 분야(分野)4)에 천자의 기가 있으니 그리 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 말을 들은 유언은 마음을 바꿔 익주목으로 가기를 원했다. 익주분야에 천자의 기가 있다는 동부의 말이나 이를 듣고 마음을 바꿔 익주목으로 가기를 원한 유언 모두 이미 딴마음을 품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유언은 자가 군랑(君郞)으로 형주 강하군 경릉현 출신이었다. 전한 노공왕(魯恭王)의 후손으로 장제 시절에 선조가 경릉에 봉해졌으므로 분가하여 나온 집안이었다. 낙양령과 기주자사, 남양태수, 종정 및 태상을 역임한 인망 있는 조정의 중신이었다. 동부 또한 상서(尙書)를 전공한 유학자 출신으로 천문에도 밝았다.
대장군 하진이 추천해 당시 시중 벼슬을 하고 있었다.

유언이 익주목으로 임명받아 촉군으로 들어갈 때 동부와 태창령(太倉令) 조위(趙韙)도 벼슬을 버리고 함께 유언을 따라갔다. 배가 침몰하려 하면 배 안의 쥐떼가 먼저 알아차리고 둥지가 기울면 새가 떠나는 법이다. 이들은 다 조정의 중신이고 이름이 있는 명사들이었지만 조정이 붕괴할 조짐을 보고 먼저 떠나가기로 한 것이다.

얼마 후 영제 초에 환관들에 의해 살해당했던 태부 진번의 아들 진일과 술사 양해가 새로 임명된 기주자사 왕분을 찾아 왔다. 왕분은 진번의 문객 출신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자, 양해가 기쁜 낯빛으로 말했다.
“천문을 보니 환관들에게 불리한 징조가 보입니다. 황문과 상시들을 싹 쓸어버릴 좋은 기회입니다.”
“그렇다면 이 왕분이 그 일을 하고 싶소!”
왕분은 이들과 결의를 했다. 이때부터 왕분, 진일 등은 호걸들을 끌어모아 모의를 진행했다. 먼저 흑산적이 여러 군현을 공격하여 약탈하고 있음을 이유로 백성들을 징집해 군대를 일으킬 수 있게 해달라고 조정에 요청했다.

때마침 영제가 제위에 오르기 전 자신의 봉지였던 기주 하간(河間)에 있는 옛집을 방문하고자 했다. 왕분 등은 영제가 하간으로 오게 되면, 병사를 동원해 억류하고 여러 상시와 황문들을 모두 살해한 후에 황제를 폐위하고, 합비후(合肥侯)를 새 황제로 세우기로 모의했다.
이 꾀를 낸 사람이 허유였다. 허유는 한때 낙양에서 조조와 함께 어울리던 친구사이였다. 왕분 등이 호걸들을 모의에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허유는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있던 조조에게 이 계획을 알리고 동참을 권유했다.

조조는 반대 의사를 표시하며 동참하기를 거부했다.
“군주를 폐립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상서롭지 못한 일이오. 옛사람들의 사례를 보면 권력을 잡고 있으면서도 계책에 따라 성공한 경우도 있고 실패한 경우도 있었소. 이를 성공시킨 사람은 이윤과 곽광이오. 이윤과 곽광은 다 지극한 충성심을 품고 있었고, 재상의 직위에 있으면서 실질적으로 정권을 장악했고 또 여러사람들의 의견이 하나로 합쳐졌으므로, 능히 폐립의 계책을 성사시킬 수 있었던 것이오.
지금 제군들은 앞 시대 사람들이 쉽게 성공한 것만 보고 지금 그 일이 어려운 점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소. 비상한 일을 만들어 내어 반드시 성공하기를 원하고는 있지만, 오히려 일신의 화를 초래하게 될 가능성이 높소!”

이때 왕분 등은 평원군의 명사 화흠과 도구홍에게도 함께 모의에 가담할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도구홍은 가담하러 갈 생각이었으나 화흠이 만류했다.
“군주를 폐립하는 일은 이윤과 곽광조차도 어려웠던 일이오. 왕분은 성정이 치밀하지 못하고 군사력을 갖추지 못했으니 반드시 실패할 것이오.”
이 말을 듣고 도구홍은 모의에 가담하지 않았다.

황제가 북방을 순시하려는데 한밤중에 붉은 기운이 하늘을 반쯤 덮고 동서로 길게 비추었다. 태사가 이 사실을 아뢰면서 순행을 중지하도록 권했다.
“북방에 음모가 있습니다. 북행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마도 기주에서의 모반 기미가 이미 어느 정도 새어나가 있었던 모양이다.

황제는 순방을 중지하고 왕분에게 이미 모아 놓은 군사들을 해산하도록 명했다. 왕분은 거사가 탄로난 것으로 알고 인수를 풀어놓고 도망가다가 평원에 이르러 자살했다.
사족과 환관 간의 갈등이 황제를 폐립하는 음모를 꾸미게 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용어 설명*
1) 자궁(紫宮)이란 자미원(紫微垣)을 말하는 것으로, 고대 동아시아의 천문학에서는 북극성을 상제라고 생각해서 그 주변을 상제가 거하는 궁정이라는 의미의 자미원이라 칭하고 하늘의 중심으로 여겼다. 천문 관측 결과 혜성이 자궁을 범하면 황궁이 침범을 당한 것이므로 매우 상서롭지 못한 징조였다.

2) 태상(太常): 9경 중 첫 번째 직위로서 황실의 종묘와 제사를 주관하는 고위관직

3) 자사와 주목은 다같이 한 주를 맡아 관리 감독하는 직책이지만, 그 권한과 지위에 큰 차이가 있다. 자사는 행정책임자라기 보다는 감찰관에 가까워 비록 군의 태수들을 관리 감독하기는 하지만 지위가 상하관계가 아니었고 태수들도 명령통제를 받지 않았다. 주목은 주의 실질적 행정책임자로서 직급도 태수보다 높았으며 상하 복종관계였다.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군을 주의 치소를 정해 직접 관할하는 동시에 지방군의 지휘권까지 행사했다. 이때 유언의 건의로 자사에서 주목제도로 바뀌었다.

4) 분야(分野)란 천문용어로서 하늘의 별들을 28수(宿)의 영역으로 나누고 중국의 전토를 이 각각의 수에 배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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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