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심판’ 외친 후 2년, 심판대 위에 선 尹대통령


22대 총선이 여당의 참패로 끝나면서 정치권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레임덕'(권력 누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채상병-김건희 특검'에 대한 여당의 태도가 총선 전과 미묘하게 달라졌다. 민심을 등에 업은 야권은 벌써부터 윤 대통령의 '탄핵 소추'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2년 전 '문재인 정부 심판'을 외치며 대권을 거머쥔 윤 대통령이, 임기 3년을 남기고 심판대 위에 선 모습이다. 이에 야권뿐 아니라 여권 일각에서도 '달라진 윤석열'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총선 압승의 기세를 몰아 21대 국회 임기 내 '특검법 릴레이 처리'를 벼르고 있다. 민주당은 21대 국회가 끝나는 다음달 29일까지 쌍특검법(김건희 특검법·대장동 50억 클럽 의혹 특검법)과 채상병 특검법, 이태원 참사 특별법, 이종섭 전 주호주대사 임명 관련 특검법 등 각종 특검과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야권이 띄운 특검법을 모두 반대했다. 지난해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대장동 개발사업 50억 클럽 뇌물 의혹 특검법) 역시 당론으로 부결하고,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그러나 총선 후 기류가 달라졌다. '성난 민심'을 확인한 국민의힘 입장에선 그간의 당론을 계속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실제 여권 내에선 '특검법 찬성' 목소리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경기 성남 분당갑에 출마해 4선에 성공한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12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채상병 특검법 표결 처리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찬성"이라며 본회의 표결 시 찬성표를 던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 도봉갑 김재섭 당선인은 같은날 KBS라디오 《전종철의 전격시사》에서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국민들이 그 문제에 대해 의문을 갖고 해소해야 한다고 요청하는 상황"이라며 "특검을 요구하는 국민의 요청을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이 등을 돌리면 윤 대통령이 특검을 막아낼 방도가 없다. 22대 국회 의석상 민주당 175석에 우군 조국혁신당(12석), 여기에 개혁신당(3석)·새로운미래(1석)·진보당(1석)까지 더하면 특검 찬성표는 기본 192표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돌아온 법안은 재적 의원 3분의2 이상, 즉 200명 이상의 재의결이 있어야만 통과시킬 수 있다. 즉, 국민의힘에서 단 8명만 찬성으로 표를 던져도 법안은 그대로 통과되는 것이다. 이 경우 대통령은 다시 거부할 수 없다.


총선 후 윤 대통령이 코너에 몰리자 정치권 내 '윤석열 저격수'들의 목소리도 한층 선명해졌다. 그간 야권에서 불문율처럼 언급을 삼갔던 '대통령 탄핵' 주장까지 표출되는 모습이다.

국민의힘 탈당한 후 이번 총선에서 배지를 단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이날 TV조선에 출연해 채상병 사건과 관련해 항명 및 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재판을 두고 "만약에 무죄가 나오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사유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검이고 뭐든 간에 대통령께서 이번 선거 결과를 보고 즉각적으로 공소 취소에 대해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구속돼 재판받는 상태로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송영길 소나무당 대표는 이날 옥중 성명을 내고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연대해 김건희 특검법 및 박정훈 대령 수사외압 특검법을 통과시켜 특검수사로 밝혀지는 범죄사실로 윤석열 대통령을 꼭 탄핵시키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다만 정치권에선 민주당의 탄핵 소추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만약 범야권이 국회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인 200석 이상을 장악하고 대통령 탄핵에 착수할 경우 이를 막을 최후의 보루는 헌법재판소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대통령 탄핵저지선이 가까스로 확보된 만큼, 여당 내에서 반란표가 나오지 않는 이상 대통령 탄핵소추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탄핵'이라는 극단적인 시나리오가 거론된다는 것만으로도 윤 대통령에겐 부담이다. 만약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하락한다면 여당 내에서 '대통령 탈당' 요구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마저 나온다.

결국 윤 대통령이 남은 3년간 정책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거대 야당'과의 협상이 불가피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간 이재명 대표를 만나지 않아온 윤 대통령이지만, 총선 후 여권 일각에서도 '영수회담' 가능성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앞서 이 대표는 윤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영수 회담을 제안했지만 모두 '방탄 전략'이라며 거절당했다.

대통령실도 영수회담과 관련해 열린 입장을 내놨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지난 11일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이 말한 경제와 민생 안정이 야당과 협조하고 소통에 나서겠다는 뜻이냐'는 질문에 "그렇게 해석해도 좋다"고 했다. "사법 리스크가 있는 야당 대표를 대통령이 만나는 것은 국민들에게 불공평한 메시지를 제공할 수 있다"는 대통령실의 과거 입장과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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