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되든 말든' 손놓은 김성태…"돈 문제 모른다" 버티는 이유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19일 오후 2시30분 수원지법 김경록 영장전담 판사 심리로 열리는 구속전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포기했다. “성실하게 조사를 받기로 했고 반성하는 의미”라는 게 김 전 회장 변호인이 밝힌 영장 심사 불출석 이유지만, 검찰 수사를 피해 출국한 뒤 해외 도피 8개월 만에 붙잡힌 만큼 영장 발부를 피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전 회장과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선길 현 쌍방울그룹 회장도 영장 심사에 나서지 않기로 했다.


▲해외 도피생활 중 태국에서 체포된 쌍방울 그룹의 실소유주 김성태 전 회장이 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압송되고 있다.

법원은 심문 없이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서를 중심으로 영장 발부 여부를 판단하게 됐다. 앞서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 김영남)는 이날 0시40분쯤 김 전 회장에 대해 횡령·배임, 자본시장법 위반, 외국환거래법·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뇌물공여, 증거인멸교사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관련 혐의는 빠졌다.


지난 17일 태국에서 김 전 회장 등을 압송한 검찰은 이틀 간 구속 영장 청구를 위한 고강도 조사를 벌였다.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난 혐의들에 대한 확인 작업 위주였다.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포함한 각종 의혹에 대한 수사는 구속 이후 본격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김 전 회장 구속이 그동안 답보상태였던 검찰 수사의 만능키가 되지는 못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 전 회장의 진술 태도부터 걸림돌이다. 김 전 회장은 귀국편 기내에서부터 동행한 수사관들에게 “돈 문제는 모른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2018년 11월과 2019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2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 등에 대해 그는 “자금 형성 설계와 운영은 재경총괄본부장이 해서 나는 잘 알지 못한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이 언급한 재경총괄본부장은 그의 전 매제인 김모씨다.

김 전 회장 체포 직후 귀국 의사를 밝혔던 김 전 본부장이 태도를 바꿔 태국에서 송환 거부 소송에 나선 것도 검찰에는 악재다. 현지에서 조직폭력배 행세를 하는 A씨 등이 귀국 의사 번복을 종용했다고 한다. CB 발행은 변호사비 대납이나 대북송금 등 비자금의 용처와 관련된 모든 의혹의 출발점이다. 검찰관계자는 “김 전 본부장이 김 전 회장의 목줄을 쥐고 있는 키맨인 건 분명하다”며 “어떻게든 귀국 시기를 당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쌍방울그룹 전·현직 임직원들의 진술 태도가 바뀌는 것도 검찰을 불편하게 하는 요인이다. 최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방용철 쌍방울그룹 부회장의 뇌물 사건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엄모 전 쌍방울그룹 회장 비서실장이 대표적이다. 검찰 조사에선 ‘이재명-이화영-김성태 커넥션’을 알고 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는 엄씨는 증인석에선 “(검찰 조사에서)그렇게 말한 사실이 있다”는 정도로, 법정을 나와 기자들에겐 “친분이 있다는 설이 있었다”며 발언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쌍방울그룹의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를 받을 땐 건너 전해 들은 얘기까지 하고 나오게 되는데, 법정에 나가면 위증 소지가 있으니 번복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공무원 신분이 된 뒤에도 쌍방울그룹 계열사들로부터 법인카드와 법인차량을 제공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대북 송금 의혹의 키맨인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도 김 전 회장과 관계 등을 묻는 질문에는 묵비권을 행사하는 등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태국 등지에서 김 전 회장의 도피생활을 거들던 수행비서격인 박모씨가 지난 18일 캄보디아에서 차명 휴대전화기를 여러대 소지한 채 현지 경찰에 붙잡히는 등 주변 인물들의 신병이 속속 확보되는 것은 검찰에겐 긍정적 신호다. 관련자들 중 김 전 회장의 조카이자 수행비서 역할을 했던 서모씨의 행적만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 검찰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불법체류자의 경우 재판 없이 강제 출국되지만 태국은 이민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은 뒤 벌금을 내야 하고, 캄보디아는 또 법 체계가 다르다”며 “조기 송환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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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