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체포동의안 표결 전 장면 셋…불안 먹히고 공포 안 먹히고


1. 이재명 대표의 '부결 호소문'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을 하루 앞두고 자신의 SNS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단식에 들어간 지 21일째이자, 녹색병원으로 이송된 지 3일 만이다. 142쪽에 달하는 검찰의 구속 영장 청구서에 대한 강한 비판을 담은 입장문이었다.

"체포동의안 가결은 정치 검찰의 공작 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

"검찰 독재의 폭주 기관차를 멈춰 세워달라"

"표결할 필요 없이 영장을 청구할 기회를 여러 차례 줬는데도 검찰이 거부한 건 명백한 정치 보복"

이재명 대표의 긴 입장문 중 핵심적인 내용들이다. 대부분의 언론이 '사실상' 부결 호소라고 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직접적인 부결 요청이다. 분노와 간절함이 담겼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과 보수 언론은 지난 6월 국회 대표 연설에서 불체포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겠다고 공식 선언한 입장을 바꿨다고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이 대표는 물론 최근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적했듯 2년이라는 검찰의 오랜 수사 기간과 주변에 대한 대대적인 강제 수사도 일반적이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불체포 특권 포기 입장을 뒤집을 만한 호소력과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오히려 반대로 이 대표가 단식 중에도 저런 긴 글을 올린다는 건 가결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라는 인식을 갖게 한 면이 있다. 이 대표가 흔들린다고 하면 핵심 지지자들은 더 지키려 하겠지만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지지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다. 이런 불안감은 이미 부결로 마음을 굳힌 비명계 의원들을 덜 불안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이 대표의 부결 호소문 자체도 너무 길었다. 오랜 단식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을 텐데 장문의 호소문을 올린다는 게 쉽게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가결 흐름을 잠재울 만한 호소문의 영향력은 부족했다. 지난 2월 1차 표결 때와 비교하면 찬성표를 던진 민주당과 다른 야당 의원들이 10명 정도 더 많았다. 1차 때 기권 또는 무효표를 던졌던 의원들이 이번 2차 때는 적극적으로 찬성표를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2. 친명계 핵심 "끝까지 색출해 정치생명 끊겠다"


원외 친명계 인사의 글도 결정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였다. 강위원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사무총장 겸 더광주연구원장이 비명계를 겨냥해 "정치 생명을 끊겠다"고 엄포를 놨다.

그는 표결 이틀 전인 지난 19일 유튜브 채널 '새날'에 출연해 "(민주당 의원들이)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며 "이번에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에) 가결표 던지는 의원들은 끝까지 추적, 색출해서 당원들이 그들의 정치적 생명을 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포감을 주기 위해 말에는 날이 서 있었다. 이른바 '개딸'로 불리는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자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강 사무총장은 원외 인사이긴 하지만 광주를 지역 기반으로 둔 친명계 핵심 인사이다. 강성 지지자들은 물론 비명계 입장에서도 그의 말은 이 대표의 뜻으로 충분히 읽힐 수 있었다.


3. 강성 지지자들의 '부결 인증샷' 요청


강성 지지자들도 적극 나섰다. 이른바 '부결 인증샷'. 이 대표 지지자 모임인 '민주당의 민주화 운동'은 국회 표결을 앞두고 온라인 사이트를 만들어 체포동의안에 부결표를 던지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거나 지지자들의 문자메시지에 답변한 의원들의 명단과 인증샷을 함께 올렸다. 친명계 의원들도 적극 화답했다.

"너무나 당연히 부결", "부결시키는 것이 무도한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는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민주당 의원들의 부결 인증 글이 올라왔다. 표결 하루 전인 20일 기준으로 80명 이상의 의원들이 부결 인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의원들은 자신의 SNS를 통해 "부결 당론이 맞다고 본다" "체포동의안에 반대하겠다"라며 별도의 사전 약속까지 했다. 이 또한 정치 행위라고 할 순 있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심각하고 불안한 상황인가?'라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일부 강성 지지자들은 여러 비명계 의원실에 전화해 간곡히 호소하거나 압박했다고 한다. 이를 대하는 비명계 의원들은 입장을 바꾸기보단 오히려 마음을 굳히는 쪽으로 갔을 수도 있다.

비명계 의원들은 오래전부터 불안해했다. 지역구를 빼앗길 수 있다는 큰 위기감이다. 총선을 앞두고 어느 당이든 내부 경쟁이 있긴 마련이다. 그런데 너무 빨리 친명계 인사들이 비명계 지역구에 '깃발'을 꽂으려 했다. 비명계 의원들은 스스로 부결 인증을 한다고 해도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자신들보다 더 오래전부터 부결을 외쳤던 친명계 경쟁자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안해했다.

결과적으로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이재명 대표는 불안감을, 그리고 일부 친명계 핵심과 강성 지지자들은 공포감을 심어줬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최소 29명, 최대 39명이라는 '반란표'가 나왔다. 불안은 먹히고 공포감은 먹히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번 표결로 친명과 비명 사이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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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