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도 600만원…'고삐풀린 공사비' 곳곳 갈등
"7개월 동안 협상만 15번을 했습니다. 지금 받아든 공사비도 납득이 어렵긴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서울 마포구 공덕동 일대에 아파트 1101가구를 짓는 공덕1구역재건축 사업. 예정대로라면 지난해 6월 첫 삽을 떴어야 했지만 공사비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착공이 8개월 넘게 늦어지고 있다.
처음 시공사를 선정한 2017년에는 3.3㎡당 공사비 약 448만원에 계약을 체결했지만 5년 새 공사단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탓에 지난해 하반기부터 재협상에 돌입했다. 조합에 따르면 시공사 측은 50% 이상 높은 3.3㎡당 680만원을 제시했고 이후 협상을 거쳐 현재는 613만원 수준에서 타결을 앞두고 있다.
부동산시장 침체로 아파트가격은 43주 연속 하락하고 있지만 신축 아파트 공사비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 건설 인건비 증가 등이 원인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원자재 가격 상승은 단기간에 해결이 어려운 만큼 인건비 급증을 막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 유입, 노조 불법행위 단속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시공사를 선정한 재건축·재개발 단지들의 3.3㎡당 공사비는 대부분 600만원을 넘긴 선에서 형성되고 있다. 지난해 중순만 해도 평당 500만원 초반 수준이었던 공사비가 불과 1년도 안 돼 30% 이상 급증한 것이다.
지난달 시공사를 선정한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6구역재개발 조합은 GS건설과 3.3㎡당 655만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중구 신당8구역재개발 조합도 지난달 포스코건설과 계약을 체결했는데 3.3㎡당 공사비는 650만원이었다.
하이엔드 브랜드, 특화 상품 적용이 일반적인 강남권은 700만원을 넘기고 있다. 지난 1월 시공사를 선정한 서초구 방배신동아 재건축은 3.3㎡당 공사비가 732만원이다. 포스코건설의 하이엔드 브랜드인 '오티에르'가 처음 적용될 예정이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도 600만원을 넘긴 단지가 나왔다. 경북 구미 형곡4주공은 지난달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는데 3.3㎡당 공사비가 602만원이었다. 지방사업장 특성상 마감재 상향 등 고급화가 거의 적용되지 않은 단지임에도 600만원을 넘긴 것이다.
이미 공사가 시작된 단지들에서는 공사비를 올려 달라는 시공사와 난색을 표하는 조합 사이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입주를 두 달 앞둔 서울 강남구 대치푸르지오 써밋의 경우 시공사인 대우건설이 조합에 공사비 670억원 증액을 요구하면서 지급이 이뤄지지 않을 시 조합원 입주가 제한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양천구 신목동파라곤은 지난 1일부터 입주가 시작됐어야 했지만 시공사 동양건설이 추가 공사비 100억원을 요구하며 단지 입구를 컨테이너로 막아선 상황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도급계약서대로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인플레이션 등 갑작스러운 시장환경 변화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검증 제도가 있기는 하나 강제력이 없다는 게 한계"라고 했다. 그러면서 "일각에서 조정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민간사업주체 간의 계약에 강제적인 개입을 제도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했다.
한편 건설업계에서는 공사비 급증을 두고 자재가격 상승보다도 인건비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주장한다. 건설 인건비의 경우 대한건설협회가 반기마다 조사하는 시중노임단가 통계가 기준이 되는데 통계상 올해 상반기 적용 임금은 지난해 동기 대비 약 5%밖에 증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1일 8시간 근로 단위 임금일 뿐 현장과는 괴리가 크다는 게 건설업계의 주장이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건설노조의 횡포로 생산성 자체가 현저하게 떨어져 있다"며 "또한 통계에 잡히지 않는 추가, 연장근로 수당이 대폭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건설자재는 최근 전기요금 상승과 중국의 리오프닝의 영향이 크다. 철근의 경우 철강회사들이 가공을 위해 고로(용광로) 혹은 전기로를 사용하는데 ESG경영(환경·책임·투명경영) 차원에서 전기로를 사용하는 회사들이 늘면서 전기요금 인상이 철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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