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분당 예견했나…정운천 '1보 후퇴' 의미는

4·5 전북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 출마 여부를 놓고 고심하던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분당(分黨)을 내다본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관측이다. 정 의원의 불출마로 전주을 재선거는 김호서 후보와 임정엽 후보의 무소속 양자대결로 재편될 전망이다.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이 3일 전북 전주시 전북도의회 기자회견장에서 4·5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은 3일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도민들과 현장의 의견이 '협치가 중단돼선 안된다' '국회의원 임기를 채워달라'는 요청이 많았다"며 "전북특별자치도법 추가 입법 등의 현안을 해결하고 '쌍발통 협치'의 성과를 내 도민들께 희망을 드린 뒤, 당당히 내년 22대 총선에서 선택을 받겠다"고 선언했다.

별도로 발송한 문자 메시지에서도 "대도시권광역교통특별법, 수소·탄소산업단지, 국가식품클러스터단지 등과 전북특별자치도 추가 입법 등 해결해야할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현직 비례대표 의원직을 사직하고 1년짜리 선거에 나오는 게 맞는 일인가 고심하게 됐다"며 "이번 전주을 재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고 부연했다.

이날 정운천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관측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향한 세 차례의 검찰 소환조사와 구속영장 청구, 체포동의안 표결에서의 '이탈표' 속출에 이날 법정 출석까지의 정국 흐름을 고려할 때, 이번 재선거 출마보다는 내년 총선 출마가 구도상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현재 이미 현역 국회의원 신분이다. 4·5 재선거에 출사표를 던져 당선되더라도 계속해서 의원일 뿐이다. 반대로 비례대표를 사퇴하고 혹시 재선거에서 낙선한다면 의원직을 잃게 된다. 얻는 것은 보수정당의 험지 호남에서 지역구로 두 차례 당선됐다는 정치적 체급이지만, 잃는 것과 비교하면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상직 전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치러지는 이번 재선거에 민주당이 당헌·당규대로 무공천을 결정하면서 구도도 까다롭게 됐다.

정당의 공천을 받지 않아 거취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무소속 후보들이 상대가 되면서 '반(反)정운천 단일화'론이 일고 있다. 민생당 후보로 출마를 고려하던 이관승 공동대표는 지난달 27일 "전주을 재선거에서 무도한 윤석열정권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위해서는 범야권 후보 단일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다.

만약 정 의원이 재선거에 출마했다가 무소속 후보의 단일화가 성사되면서 결국 석패해 의원직을 잃는다면 정치적 내상이 매우 크다. 이런 점과 함께 중앙 정계의 흐름을 고려했을 때, 내년 총선에서의 구도가 훨씬 유리할 수 있다고 내다보고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선택하지 않았겠냐는 분석이다.


지난달 27일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됐지만 당내 '이탈표'가 속출하면서, 보수정당 정치인의 호남에서의 상황은 단기 전망과 중장기 전망이 차이가 많이 나게 됐다. 지역 정가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전통적인 야권 지지층이 결집하는 상황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민주당이 분당하면서 내년 총선이 다자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이날 민주당 혁신위가 현역 국회의원을 포함해 지역위원장을 평가하는 당무감사 항목에 '권리당원 여론조사'를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당내 원심력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평가가 저조한 선출직 공직자에 대해서는 내년 총선 경선에서 득표 감산율을 기존 20%에서 30%로 확대하는 내용도 담겼다.



권리당원들 중 이재명 대표의 맹목적 극성 지지층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당무감사 평가에 권리당원 여론조사가 포함되고 이를 근거로 경선 감점까지 한다면, 내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 사당화(私黨化)에 항거하던 당내 소신파·양심파 의원들을 솎아내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친명(친이재명)계 초선 강경파 김용민 의원은 전날 SBS라디오 '정치쇼'에 출연해 "총선 룰을 당원과 지지자들이 공천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결국에 총선에서 당원들과 지지자들의 선택에 따라서 그분들이 (당내 소신파·양심파 의원들을) 심판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거들었다.



이에 대해 비명(비이재명)계로 분류되는 5선 중진 이상민 의원은 이날 불교방송라디오 '아침저널'에서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들의 발언권을 높이려는 쪽으로 가게 되면 상대 쪽에서는 가만히 있겠느냐"며 "내 입장을 강화해 상대를 누르겠다고 한다면 상대도 바보가 아닌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매우 지혜롭지 못한 판단"이라고 꼬집었다.



이를 놓고 체포동의안 '이탈표 사태'로 불붙은 당내 계파간 전면전에 내년 총선 공천 룰이라는 '기름'이 끼얹어지면 당이 결국 깨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정치 9단'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이날 YTN라디오 '뉴스킹'에 나와 "지금 친명·비명 민주당에 '공천 공포증'까지 오면 잘못하면 분당(分黨)의 길로 간다"며 "공천 혁신안은 절대 하지 말라고 이재명 대표에게 오늘 한 번 전화를 드려 권하겠다"고 우려했다.



향후 이재명 대표를 향한 구속영장이 재청구돼 체포동의안이 재상정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검찰이 불구속 기소를 해서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시 당직정지'를 규정한 민주당 당헌 제80조의 적용이 문제가 되는 상황이 오면 민주당 내의 구심력은 더욱 약화되고 원심력이 커지면서 분당 우려는 고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역 정가 관계자는 "민주당이 깨지고 새로운 야당이 생겨서 내년 총선에 임하게 되면, 정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들은 단일화를 위한 후보 사퇴 등 거취 문제를 사사롭게 결단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다자 구도가 확정된다"며 "정운천 의원이 이같은 정국의 흐름까지 내다보고 결단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지난 2016년에도 정운천 의원은 전북 전주을에서 최형재 민주당 후보가 37.4%, 장세환 국민의당 후보가 22.8%를 나눠갖는 사이, 37.5%를 득표해 보수정당 후보로서는 32년만에 전주에서 당선된 적이 있다. 다자 구도의 이점을 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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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