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보다 비싼데..'제네시스' 美서 불티나게 팔린다

IRA 복병 만난 현대차 미국 판매 '분노의 질주'
8월 13만5526대 역대 최대
전기차 판매 2배 이상 늘어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지난달 미국에서 각각 역대 8월 기준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다. 북미에서 생산되는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에도 전기차 판매는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 미국 시장에서 품질 경쟁력이 인정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제네시스 포함)와 기아의 지난달 미국 판매량이 13만5526대로, 작년 8월 대비 17.7% 증가했다고 2일 발표했다. 올해 들어 월간 최다 판매량이자 역대 8월 기준으로도 최다 판매 기록을 갈아치웠다. 현대차(6만9437대)는 전년보다 13.5% 늘었고, 기아(6만6089대)도 22.4% 증가했다.

도요타(-9.8%) 혼다(-37.7%) 등 실적을 공개한 경쟁 업체의 판매가 작년보다 평균 8.6% 감소하면서 현대차·기아의 시장 점유율이 상승했다. 삼성증권은 현대차·기아의 8월 점유율이 12%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제너럴모터스(GM·18만8000대) 도요타(16만9626대) 포드(15만1000대)에 이어 4위에 올랐다는 분석이다.

현대차·기아는 친환경차 부문에서도 선전을 이어갔다. 전기차(4078대) 하이브리드차(1만807대) 수소차(18대) 등 모두 1만4903대를 판매했다. 작년 8월보다 79.3% 증가했다. 전기차는 지난달 중순부터 보조금 지급이 끊겼음에도 103.9% 급증했다. 올 들어 8개월 연속 작년 동기 대비 세 자릿수 증가율을 이어갔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5(1516대), 기아는 EV6(1840대)가 전기차 판매를 이끌고 있다. 5월부터 판매 중인 GV60(324대)와 지난달 판매를 개시한 G80 EV(12대) 등 제네시스도 가세했다. 전기차 점유율(7.7%)은 5위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IRA 타격이 본격화하기 전에 정부가 미국을 설득해 법을 고치거나 시행을 미뤄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기아, 혼다의 2배 팔고 도요타 추격…'보조금 악재'도 넘을까
도요타 -10%·혼다 -38%와 대조적…보조금 중단에도 친환경車 질주

“이젠 미국에서 도요타를 따라잡는 것도 꿈은 아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가격이 아니라 상품 경쟁력을 무기로 자동차의 본고장 미국에서 질주하고 있다. 신차 가격을 경쟁사보다 비싸게 책정하고, 딜러 보조금(인센티브)을 가장 적게 주고 있는데도 차량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보조금을 못 받게 된 친환경차도 차량 품질로 불리한 여건을 상쇄하고 있다. 2010년대 중반만 해도 일본 업체들에 밀려 ‘마이너 리그’에 머물렀던 현대차그룹이 ‘메이저 리그’로 올라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 비싸게 팔아도 많이 팔려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현대차그룹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제품군 부재로 미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당시만 해도 일본 업체들은 ‘넘사벽(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다. 2015년 연간 판매량은 도요타가 250만 대, 혼다 158만 대, 현대차·기아 138만 대였다. 도요타의 절반 수준이었고, 혼다와는 20만 대 차이가 났다.

이날 나온 현대차그룹의 지난달 성적표는 완전히 달랐다. 도요타 16만9626대, 현대차·기아가 13만5526대로, 양사 간 격차는 3만4000대 수준으로 좁혀졌다. 지난 1월 격차(6만3829대)의 절반 수준이다. 7만1461대의 혼다는 ‘더블 스코어’에 가까운 판매량으로 제압했다. 현대차그룹의 지난달 미국 시장 점유율은 역대 최고인 12%로 치솟았다.

차량의 경쟁력 자체가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품질 척도인 가격에서부터 경쟁력이 드러나고 있다. 올해 7월 기준 제네시스의 미국 평균 판매가격은 6만573달러로 렉서스 5만5801달러보다 비싸다. 혼다의 프리미엄 브랜드 아큐라는 5만2879달러다. 딜러에게 주는 인센티브도 미국 시장에서 가장 낮다. 보조금을 조금 줘도 차가 잘 팔린다는 뜻이다. 7월 현대차와 기아의 대당 딜러 인센티브는 각각 490달러, 582달러로 도요타 754달러, 폭스바겐 1103달러보다 낮았다. 스텔란티스는 1949달러에 달했다.

SUV, 세단, 픽업트럭 등 다양한 제품군이 고르게 팔리고 있다. 지난달 현대차의 베스트셀링 모델은 콤팩트 SUV 투싼으로 1만4305대가 팔려 전년 동월 대비 28% 증가했다. 아반떼(미국명 엘란트라)도 30% 증가한 1만4238대로 투싼과 쌍벽을 이뤘다. 후발주자로 뛰어든 픽업트럭 시장에서 싼타크루즈가 지난달 2899대 팔리면서 전년보다 132% 급증했다.

○보조금 못 받는 친환경차도 선전

지난달 17일 IRA 시행으로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된 현대차·기아의 친환경차들도 선전하고 있다. 지난달 두 회사의 친환경차 판매량은 1만4903대로, 전년 동월보다 79.3% 증가했다. 아이오닉 5 등 순수 전기차가 4078대 팔려 103.9% 늘었고, 하이브리드카는 1만807대로 72.4% 증가했다.

다만 8월 실적은 연초 계약분이 인도된 것이어서 IRA 영향이 본격화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IRA에 의해 보조금이 제외된 친환경차의 성적표는 내년 초께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은 희망과 우려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경쟁력이 높고 다른 업체들도 촘촘한 IRA 보조금 요건을 맞추기 쉽지 않은 만큼 선전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적지 않다. 북미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는 테슬라와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이 3750달러의 보조금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는 현대차그룹이 극복할 수 있는 차이라는 것이다.

반면 친환경차 연간 누적판매량이 20만 대를 넘으면 보조금을 주지 않는 제한이 사라지는 내년엔 상황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관측도 많다. 테슬라와 GM, 포드 등에 해당하는 이 조항이 사라지면 가격 격차가 커질 수 있어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미국 앨라배마와 조지아의 내연기관차 생산 라인을 전기차로 신속히 변경하는 게 단기적인 해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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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