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FDPR 면제서 한국 제외.. 반도체·車·조선 '비상'

美 기술 활용한 57개 품목·기술
러 수출하려면 美 허가 받아야
현지 진출기업 부품조달 직격탄
조선 3사, 8조대 대금결제 남아
삼성重 5조대 중도금 수금 지연
러 의존도 20% 넘는 품목 118개
수입차질 따른 물가불안 우려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강력한 제재 조치로 미국이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실시해 대(對) 러시아 수출통제 조치를 강화하면서 유럽과 호주, 일본 등은 적용 국가에서 제외된 반면 우리나라는 포함돼 반도체와 조선, 자동차 등을 수출하는 국내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더불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퇴출하는 제재안을 내놓으면서 기업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1일 업계 등에 따르면 FDPR 적용으로 반도체 등 상당한 우리 주력 수출 품목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FDPR를 발표하면서 반도체를 비롯해 컴퓨터,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기업의 러시아 수출규제를 예고했다. 이에 따라 반도체·정보통신·센서·레이저·해양·항공우주 등 57개 품목·기술 분야에서 미국 기술이나 소프트웨어(SW), 장비를 활용한 제품을 러시아에 수출하려면 반드시 미국 상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유럽연합(EU)과 일본, 호주,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는 FDPR 규제 조치를 받지 않는다. 반면 면제 대상에서 누락된 우리나라는 일일이 허가 품목 여부를 확인받아야 해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당장 반도체만 놓고 보면 한국의 대러 수출 비중(2021년 기준 0.1% 미만)은 크지 않지만, 현지에 있는 한국 기업의 생산 제품에 쓰이는 관련 부품들까지 고려한다면 파급효과는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원자재 조달도 문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네온·크립톤·제논(크세논) 등 희귀가스 상당량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전 세계 네온 사용량의 70%, 크립톤의 40%가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된다. 네온의 경우 주 생산국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미국, 중국, 프랑스 5개국에 불과하다. 네온은 수입액의 23.0%와 5.0%를 각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공급받고 있다. 크립톤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지난해 전체 수입 물량 가운데 30.7%와 17.5%를 차지한다.


조선업계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국내 조선사 입장에서는 제품 수출과 동시에 스위프트 제재로 수출된 제품의 자금 회수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스위프트는 전 세계 은행 간 송금이 가능한 결제망으로, 막히면 국내 조선사들이 선박 건조를 완료해도 대금 상당 부분을 받는 데 차질이 생긴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주요 조선 3사가 러시아와 계약한 선박은 총 7척으로 8조원 상당이다. 삼성중공업은 러시아 국영조선소 즈베즈다와 공동으로 추진해온 5조원 규모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프로젝트와 관련해 중도금을 받기 직전에 이번 사태가 발발하면서 주말까지 대책 마련을 논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수입 차질에 따른 생산자·소비자물가 불안도 우려된다. 우리나라가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품목 가운데 전체 수입량의 20% 이상인 품목이 118개나 되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산 수입 비중이 50% 이상인 품목도 62개에 달했다.

이날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정형곤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통관 코드(HS10) 단위 기준으로 지난해 러시아에서 수입한 품목 2075개(173억5000만달러)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집계됐다고 밝혔다.


118개 품목 중 수입액이 가장 많은 품목은 나프타(43억8000만달러)로, 러시아산이 해당 품목 전체 수입액(187억달러)의 23.4%를 차지했다. 수산물은 러시아산 의존도가 특히 높았다. 대게는 전체 수입의 전부를 러시아에서 들여왔고, 명태(96.1%), 대구(93.6%), 북어(92.7%), 명란(89.2%) 등도 비중이 높았다.
한편, 이날 한국무역협회는 지난달 24일부터 28일까지 협회가 가동하는 우크라이나 사태 긴급대책반에 국내 기업 101곳으로부터 138건의 애로사항이 접수됐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뉴스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