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시나리오는 '정권교체?'..점령 시도 땐 우크라가 '제2의 아프간' 될 수도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우크라이나 정권 교체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정권을 교체하더라도 반러 시위를 막기 어렵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을 시도할 경우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에서 겪은 옛 소련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25일(현지시간) 시민들이 대피소에 피신해 있다.

서방 언론과 전문가들은 푸틴의 다음 수순은 우크라이나 정권 교체라고 보고 있다. 런던 소재 싱크탱크 왕립연합서비스의 분석가 사무엘 크레니-에반스는 파이낸셜타임스에 “푸틴의 의도는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면서 “다음은 정권 교체”라고 말했다. 미국 국방 연구 싱크탱크인 해군분석센터(CNA)의 러시아 전문가 마이클 코프만은 이코노미스트 기고문에서 “러시아가 15만명이 넘는 병력을 우크라이나 접경에 배치한 것은 제한적인 작전이 아니라 최대치의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을 좁은 지역에 고립시킨 뒤 키예프 정권의 교체를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국방 관련 고위 당국자도 로이터통신에 러시아의 의도는 우크라이나 정부를 전복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러시아의 공격은 돈바스 지역을 넘어 남부·북부·서부 등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전개되고 있고, 그 중 한 축은 키예프 입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푸틴이 24일(현지시간) 침공 개시 전 연설에서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계획은 없다”면서 “우크라이나를 탈무장화하고 탈나치화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뉴욕타임스는 “‘탈무장화’는 우크라이나 전체를 굴복시켜 우크라이나의 자기방어 능력을 무력화하고 자치권을 빼앗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지적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5일 동영상 연설에서 “(러시아는) 국가 원수를 쓰러뜨림으로써 우크라이나를 정치적으로 파괴하려 한다”고 말했다.

앞서 영국 외무부는 지난달 22일 친러 성향 우크라이나 전직 관료 5명의 실명을 거론하며 러시아가 이들을 이용해 우크라이나 정권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0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침공 후 살해하거나 수감할 우크라이나 주요 인사 명단을 작성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권 교체만으로 우크라이나를 푸틴 대통령의 의지에 순응하는 국가로 만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동부나 남부와 달리 우크라이나 서부는 반러 정서가 강하다. 우크라이나에서는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을 통해 친러 성향 대통령이 권좌에서 축출된 바 있다. 2005년에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자로 확정된 친러 성향 후보가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면서 사퇴했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맥스 부트는 “푸틴의 가장 안전한 도박은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는 것이나 어떻게 권력을 유지하도록 할 건가”라면서 “이를 위해서는 친러 보안대를 만들어야 하겠지만 우크라이나에서 민족주의 정서가 커지는 점을 고려하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을 병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크라이나의 넓은 지역에 대한 점령을 시도할 경우 과거 아프간에서의 악몽을 다시 경험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옛 소련은 1979년 아프간을 침공했다가 험준한 산악 지형을 이용한 무자헤딘 게릴라의 끈질긴 저항으로 1만500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10년 만에 철수한 바 있다. 미 육군전쟁대학(AWC) 초빙교수 존 나글은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글에서 “우크라이나 저항군이 러시아 점령과 푸틴 지배에 파멸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가 저항군이 숨을 수 있는 넓은 영토, 외부 은신처와 지원, 정보전 수행 능력 등을 갖추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우크라이나는 면적이 60만㎢로, 아프가니스탄(65만㎢)보다 조금 작고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영토가 넓다. 서쪽과 남서쪽으로는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등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배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또 미국은 그동안 러시아가 침공할 경우 우크라이나 저항군에 무기와 장비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막대한 점령 비용과 러시아 병사들의 희생도 푸틴 대통령에게 자충수가 될 수 있다.

반면 제라드 하퍼 AWC 조교수는 포린폴리시에 러시아가 저항군에 대한 나토 회원국들의 지원을 문제 삼아 군사 개입을 시도할 경우 러시아와 서방간 무력 충돌로 확전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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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