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러 돈줄부터 막았다..제재 비웃은 푸틴 "'멋진 신세계' 진입할 것"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예속 (의도를) 분명히 했다. 이는 러시아 제국의 복원이자, 패권 추구다.”

22일(현지 시간)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드미트리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과 회담한 후 기자회견에서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파병 승인에 대해 “러시아의 위선(hypocrisy)을 드러낸 것”이라며 이같이 비판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러시아에 대한 신속하고 혹독한 제재의 첫 조각”이라며 러시아 국책은행 2곳과 푸틴 대통령 측근 등에 대한 제재를 발동했다. 러시아의 추가 군사행동에 따라 수출 통제를 비롯한 추가 제재도 예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차 제재”라고 했고 백악관 관계자는 “제재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 TV연설을 통해 크렘린궁에서 우크라이나 분리주의 지역을 독립국으로 승인한다고 밝히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전쟁’ 의지를 밝히는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며 굳어진 세계질서에 대한 변경 시도를 막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날 러시아에 대한 첫 제재를 단행하면서 푸틴 대통령을 겨냥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를 국제 금융시장에서 차단시켜 정부 돈줄부터 틀어막겠다는 것. 미 재무부가 제재리스트에 올린 러시아 대외경제은행(VEB)과 PSB는 에너지 수출과 국방자금 조달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VEB는 500억 달러(약 60조 원) 규모 자산을 보유한 크렘린궁의 영광스러운 돼지저금통(piggy bank)”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은 “크렘린과 부패의 이익을 나눠가진 이들은 고통도 함께 나누게 될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 측근 5명도 제재했다. 러시아 국영은행 VTB 은행 이사회 의장 데니스 보르트니코프를 비롯해 미하일 프라드코프 전 러시아 총리의 아들 페트르 프라드코프 PSB 최고경영자(CEO), 세르게이 키리옌코 러시아 대통령 행정실 제1부실장 아들인 블라디미르 키리옌코 VK그룹 CEO 등이다. 전문가들은 이 측근들이 푸틴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도우면서 주요 정책 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만큼 러시아 내부 동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이들을 제재하는 것이 필수라고 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또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러시아 국채 관련 거래도 금지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위한 신규 자금 조달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미국의 대응은 러시아에 대한 직접 제재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며 외교적 해결에 무게를 두던 전날에서 태도를 180도 바꾼 것이다.

백악관은 러시아의 ‘침공’ 정의를 바꾼 데 대해 “복합적인 이유”라며 “이는 미국의 가치(value)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의 전날 연설을 냉전 이후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대한 명백한 도전으로 보고 강경대응으로 선회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블링컨 장관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위선” “역사와 국제법 무시” 같은 표현으로 푸틴 대통령의 연설을 비판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의 계획은 우크라이나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또 푸틴 대통령의 결정은 핵을 포기하는 대신 우크라이나 안전을 보장하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물론 헬싱키 최종의정서, 파리헌장, 재래식무기감축협상, 비엔나문서 등 각종 국제 합의를 일일이 거론하며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미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가 (동서 냉전의 상징인) 새로운 베를린 장벽이 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번 첫 제재 효과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렸다. 그동안 경고해오던 푸틴 대통령 등에 대한 제재나 수출통제, 주요 대형은행에 대한 국제금융시장 전면 퇴출 등에 비하면 부족한 수준이라는 것.

러시아는 자국이 독일에 천연가스를 공급하기 위한 노르드스트림2 가스관 사업 중단을 독일이 선언한 데 대해서도 자신감을 드러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이날 “이제 유럽은 곧 가스 1000㎥를 2000유로(약 270만 원)에 사야 하는 ‘멋진 신세계’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조롱했다.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끊으면 유럽 에너지 가격이 지금보다 3배로 뛰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러시아는 그동안 서방 제재에 대비해 외환보유고를 늘리는 등 내수 위주의 ‘경제 요새화’ 전략을 취해왔다.

백악관은 “오늘 제재는 우리가 러시아에 가할 고통의 날카로운 가장자리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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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