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 가자주민 이주 없다지만…정권유지·美지지 이중압박

이스라엘 연정에 참여한 극우 정치인들이 전후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해외로 이주시키자고 목소리를 높이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를 부인하며 진화에 나섰다.


▲ 각료회의 주재하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텔아비브 AFP=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17일(현지시간) 텔아비브 국방부에서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전날 군의 오인 사격으로 사망한 인질 가족들을 위로하는 한편 "가자지구 지상전은 하마스를 뿌리 뽑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우방 미국 등의 국제사회 지지를 유지하고, 동시에 정권 유지를 모색하려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정치적 셈법이 복잡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저녁 엑스(X·옛 트위터)에 "몇몇 부분을 분명히 하고 싶다. 이스라엘은 가자를 영구적으로 점령하거나 그곳의 민간인들을 쫓아낼 의도가 없다"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 사안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발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WSJ은 전했다.

앞서 전날 이스라엘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텔아비브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팔레스타인 주민의 가자지구 밖 이주는 이스라엘 정부 정책이 아니라고 안심시켰다고 전했다.

블링컨 장관은 또한 "미국은 팔레스타인 주민의 가자지구 밖 이주를 옹호하는 모든 제안에 명백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네타냐후 총리실은 WSJ의 관련 질의에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주민을 이주시키려 하지 않는다.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은 보안검색을 거쳐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이스라엘의 정책"이라고 답했다.

최근 이스라엘에서는 전후 구상과 관련해 내각의 극우파 장관들이 팔레스타인 주민을 가자지구 밖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그 자리에 유대인 정착촌을 재건해야 한다는 발언을 잇달아 내놓아 논란을 일으켰다.

극우 성향의 베잘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부 장관은 지난달 전쟁 후 가자지구를 "장기 통제하려면 민간인이 있을 필요가 있다"며 가자지구로 유대인 정착민이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정 내 대표적 극우성향 정치인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도 자신이 이끄는 극우정당의 신년모임에서 2005년 이전 가자지구에 있던 이스라엘인 정착촌인 '구시 카티프'를 재건하기 위해 가자지구 주민을 이주시킬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바로 국제사회의 반발을 샀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연정 붕괴를 막기 위해 핵심 구성원인 극우파 장관들을 아우르고자 이전까지는 최우방인 미국의 압력에도 해당 발언에 침묵을 지켜왔다고 WSJ는 지적했다.

네타냐후 총리 정부는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는 책임론 속에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반면, 중도우파인 제2 야당 국가통합당은 지지율이 상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극우정당이 이탈하면 연정에 큰 타격이 된다.

하지만 전후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면서 이런 '침묵 전략'을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WSJ은 극우 장관들의 잇따른 강경 발언이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이나 이집트·요르단 등 이스라엘과 수교한 온건 아랍국가 등과의 사이에서 골칫거리가 됐으며, 네타냐후 총리가 이에 침묵하는 것이 미국과의 외교적 긴장을 조성했다고 분석했다.

극우장관들이 주장하는 가자주민 강제이주나 팔레스타인 지역 내 유대인 정착촌 건설은 국제법상 불법으로 간주된다.

특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거주지를 실효지배하는 방법으로 이용해온 정착촌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생존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독립 국가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구상인 '두 국가 해법'에 걸림돌이 되고 있어 국제사회의 규탄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은 평화협정에 따라 2005년 가자지구 내 유대인 정착촌을 포기하고 자국민과 군대를 철수했으나 요르단강 서안에는 여전히 다수 정착촌이 남아있다.

네타냐후 총리가 극우 정당과 연정을 구성해 지난해 말 재집권에 성공한 이후 이스라엘 정부는 서안 정착촌 확대를 강행해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렀다.

전문가들은 극우파 정치인들의 주장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하마스와의 전쟁과 관련한 미국의 지지와 정권 연장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좇는 네타냐후 총리 입장에서 상황이 복잡해졌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싱크탱크 아랍·걸프 국가 연구소의 후세인 이비시 선임연구원은 "(극우 장관들의 주장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겠지만 정부 내 극단주의와 이스라엘 정치권의 분노를 반영한다"면서 "그들의 발언은 네타냐후의 권력 유지를 돕는 쪽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네타냐후는 이를 막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이스 알오마리 미국 근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극우 장관들의 강경 행보가 외교적 긴장으로 번질 경우 "미국의 이스라엘 지지를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전략적 손실"이라고 짚었다.

네타냐후 총리의 전 비서실장인 아리 하로우는 "미국은 네타냐후 정부가 (가자지구) 정착촌 건설을 진지하게 추진하는 것은 아니라고 볼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그들(미국)은 네타냐후가 이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해줄 것을 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