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원 줄테니 제발…" 삼성전자에 쏟아지는 러브콜

세계 반도체 산업을 주름잡는 실력자들이 오는 6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집결한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자,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 엔비디아(NVIDIA) 창업자, 리사 수 AMD CEO가 함께 자리한다. 여기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도 참석한다. 좀처럼 모이기 힘든 거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유가 뭘까.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의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 신축 현장.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 TSMC가 2024년 준공 목표로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건설 중인 공장에서 '생산설비 반입식'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 행사는 반도체를 생산할 필요한 핵심 설비를 공장에 넣는 행사로 착공식과 준공식 못지않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1년 1월4일 새해 첫 현장경영으로 '평택 2공장 생산설비 반입식'을 택했을 정도다.

TSMC 생산설비 반입식의 참석자 면면을 보면 대만계 커넥션이 눈에 띈다. 모리스 창은 대만, 미국 이중국적자다. 젠슨 황, 리사 수는 대만계 미국인이다. 이들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CPU '라이젠'과 GPU '라데온'을 개발·판매하는 AMD는 위탁 생산 물량 대부분을 TSMC에 맡긴다. 삼성전자와 GPU 관련 협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파운드리는 TSMC 선호를 굽히지 않고 있다. 엔비디아는 AMD보다 덜 하지만 TSMC와 더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애플은 AMD보다 TSMC와의 관계가 더 끈끈하다. 애플은 수년째 TSMC에 핵심 반도체 생산을 위탁한다. 삼성전자는 아예 고려 대상도 아니다. 팀 쿡 CEO는 최근 "TSMC의 애리조나 공장에서 2024년부터 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 칩이 생산될 미국 공장의 이벤트에 팀 쿡이 참석 안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 공장에서 4nm(나노미터, 1nm=10억분의 1m) 공정을 구축할 예정이다. 당초 이 공장에서는 5nm 칩을 생산할 계획이었다. 월 웨이퍼 투입량 2만장으로 계획했던 생산량도 늘릴 계획이다. 애플 AMD 등 고객사의 요청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 업체 삼성전자의 움직임도 분주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미국2공장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테일러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달 신축 부지 내 건물 공사를 시작했다.


반도체 업계의 또 다른 관심은 TSMC와 삼성전자가 미국에 이어 유럽에도 파운드리 공장을 지을지 여부다. 유럽연합(EU)는 지난해 삼성전자 등에 "유럽에 반도체 공장을 지어달라"고 요청했다. 최근엔 독일 대통령, 스페인 총리 등이 연이어 삼성전자를 찾아 공장 유치 활동을 벌였다.

EU 차원의 반도체 육성책도 마련 중이다. EU는 1일(현지시간) 27개 회원국 담당 장관들이 반도체 생산 확대에 430억유로(약 59조원)를 투자하는 EU 반도체법(Chips Act)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 법안은 향후 EU와 유럽의회 간 협의를 거쳐 유럽의회를 통과하면 시행된다.

EU 반도체법은 2030년까지 EU의 세계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20%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시장 점유율은 10% 정도로 추정된다. EU 회원국들은 선폭 5nm 이하 최첨단 반도체뿐만 아니라 산업용 반도체를 만드는 전통공정 구축도 지원할 예정이다. 다만 반도체법을 통한 지원은 국가 차원의 투자와 민간 투자를 결합해야 받을 수 있다.

EU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지만 삼성전자가 당장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1~3공장이 가동 중인 경기 평택에 4~6공장 부지가 남아 있어서다. 현재 4공장 부지에선 기초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5공장도 내년 1분기에 기초공사를 시작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마련해놓은 부지도 상당하다.

EU 지역에 반도체 불모지에 가까운 점도 고려해야 한다. 대규모 파운드리공장을 짓기 위해선 반도체 장비업체 등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집적효과'가 필수적이란 얘기다. 유럽은 미국이나 한국에 비해 반도체 관련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NXP, ST마이크로, 인피니온 등의 반도체 업체들이 유럽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삼성전자의 큰 고객은 아니다. 극자외선(EUV) 장비로 유명한 네덜란드 기업 ASML은 한국, 대만, 미국 등에도 이미 ASML의 연구개발(R&D)센터, 서비스 법인 같은 인프라를 만들어놨다. 삼성전자가 EU로 서둘러 가야 할 상황이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유럽은 삼성전자가 무조건 가야 하는 지역은 아니다"라며 "혜택을 살펴서 결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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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