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270만호 공급 차질? '돈줄 마른' 건설업, 이대로면..

부동산 개발 시장이 잠정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부동산 경기는 좋지 않고 공사비 인상, 금리 상승에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금융기관들이 건전성 관리를 위해 돈줄을 조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디폴트 사업장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시행사, 건설사의 줄도산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5년간 270만호 공급이라는 정부 정책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어 대책이 필요하다.


▲12일 오후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이 보이고 있다

개발사업 휘청…연대보증·책임준공 약속 대형건설사도 '타격'


대형 건설사들은 최근 10여 년 동안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연대 보증 비중을 대폭 낮췄지만, 부동산시장 호조로 절대적인 PF 보증 규모가 늘었다. 분양이 안 되거나 시행사가 자금 조달에 실패해 사업이 지연되거나 무산되면 시공사는 공사비와 사업비 회수가 늦어지고 대위변제 상황에 놓인다. PF우발채무가 급격히 늘어나면 대형사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부동산시장 호조에 주택 사업 쏠림·PF대출 보증도 증가


11일 한국신용평가(이하 한신평)에 따르면 한신평의 유효등급을 보유한 24개 건설사의 올 6월 말 PF 보증은 약 18조원이다. 2009년 말에 25조원이 넘은 후 2018년 말 약 12조원까지 줄었으나 2020년 이후 부동산 시장이 호조를 보이면서 보증이 다시 늘었다.

최근 몇년간 주택시장의 호조로 건설사들의 주택 사업 비중은 대폭 늘었다. 한신평의 투자 등급을 보유한 건설사 중 최근 3년간 전체 매출액 중 주택(건축) 비중이 50% 이상인 건설사는 20곳에 달한다. 이 중 위험(대구·울산·경북·전남+미분양 사업장)과 주의 지역(대전·부산·경기 일부) 사업지 비중이 30% 이상인 신용등급 A 건설사는 롯데건설, 포스코건설, 태영건설, KCC건설, DL건설, 한화건설 등 6곳이다. 신세계건설은 대구·경북지역 미분양 및 예정 사업 물량이 많아 위험지역 비중이 30% 이상을 차지한다.

부동산개발업계 한 관계자는 "건설사들은 최근 10년 동안 직접 신용보강보다는 주로 공사비에 국한되는 책임준공 형태의 계약으로 위험부담을 낮췄는데 최근에는 부동산개발업계에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다양한 편법으로 보증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사들의 PF대출 보증은 최근에도 이어지고 있다. 태영건설은 지난 6일 광주시 중앙공원 민간공원 조성 사업 시행사의 사업비 대출 540억원 대환에 대한 자금 보충 약정을 결정했다. 자금 보충 약정은 시행사가 채무를 상환하지 못하면 대신 빚을 갚을 자금을 지원해주는 형태로 채무보증과 비슷하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태영건설이 지난 8월 한 달 동안 결정한 PF대출 보증금액은 3690억원에 달한다.


위험 감지·리스크 관리 총력…"공사비 확보 더 해달라"


수주를 늘리던 대형 건설사들이 최근 들어 선별 수주로 전환하는 등 리스크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대형 사업장 여러 곳이 휘청이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에는 건설경기 악화로 건설산업 자체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어서 시장에서 자금 조달도 예전 같지 않다. 포스코건설, HDC현대산업개발, GS건설는 지난 7월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 재발행을 포기하고 자체 보유 현금으로 상환했다. 조달금리 상승으로 금융비용 부담이 커졌고 건설사의 회사채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아 흥행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 둔촌주공 사태로 인해 건설사는 금융기관의 자금조달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대주단은 서울 핵심지역에 1만 가구가 넘는 대단지 사업장이지만 사업비 7000억원에 대한 만기가 돌아오자 연장을 거절하고 자금을 회수했다. 시공사와 조합의 공사비 갈등으로 리스크가 부각됐고 한 번 중단된 공사 현장은 또 다른 리스크를 포함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만약 조합이 사업비 7000억원을 갚지 못하면 연대 보증을 선 5개 건설사가 대위변제를 해야 한다. 조합은 급한 대로 시공단이 보증을 서는 조건으로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를 통해 자금을 상환했지만, 대출 기간이 오는 10월28일까지로 이후 자금 플랜을 또다시 짜야 한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자잿값은 오르고 금융비용 부담도 대폭 늘었다"면서 "공사비 인상 요구와 함께 빠르게 공사비 지급이 되지 않을 경우 공사 중단을 선언하는 건설사도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건설업 돈줄 마르면...尹정부 270만호 공급계획도 '빨간불'


주택공급의 중심이 공공이었던 문재인 정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민간 중심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등 건설업계 자금줄이 경색되고 있어 5년간 270만호를 공급(인허가 기준)하겠다는 정부의 주택정책이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금줄을 뚫어주지 못하면 주택 공급 부족이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자금시장 경색...민간 자체개발 물량 130만호 직격탄

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7년까지 계획한 전국 270만호 주택 공급 물량 중 공공택지와 국공유지 등 정부가 직접 공급 물량을 조절할 수 있는 규모는 약 88만호 수준이다. 나머지 182만호는 사실상 민간의 몫이다. 52만호는 재개발, 재건축 등 정비사업이며 130만호는 도시개발 등 민간이 자체 추진하는 사업을 통해 공급하게 된다.

하지만 집값 하락과 자금 조달 부담으로 민간의 주택공급 추진 동력은 떨어지고 있다. A 중견 부동산 개발업체 관계자는 "최근 청약 실적을 보면 서울 지역도 완판을 낙관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장이 위축됐다"며 "금리인상으로 자금조달 여건이 팍팍해졌고 자재비와 인건비 상승으로 공사비도 올라 무리하게 일감을 늘리지 않으려는 분위기"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금융사들의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등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면서 주택시장의 돈줄이 끊기고 있다.

금융당국이 자금줄을 죄면서 시장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B 시행사 대표는 "정부가 향후 270만호 공급 목표를 밝혔는데, 부동산PF 대출을 다 막으면 주택공급은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민간사업 없이 공공 주도로 270만호를 다 짓겠다는 건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C 금융사 임원은 "자산 건전성 관리는 당연히 필요하고 부실 사업장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면서도 "부동산개발 사업이 중단되면 향후 몇 년간은 신규 주택공급도 중단된다는 의미여서 결국 집값 안정화의 길도 멀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우려했다.

시행사 돈줄 마르면 공공택지 개발도 타격…악성 미분양 해소 등 보완책 필요

시행사의 돈줄이 마르면 정부의 공공택지 조성을 통한 신규 주택공급도 기대치를 밑돌 수 있다. 정부는 그동안 민간 기업에 공공택지 조성을 맡기고 일부 지분을 팔아 일반분양을 허용했다. 하지만 수익성 확보가 어려워진 민간 기업들이 외면하면 사업추진 동력이 떨어진다.

정부가 토지매각 차익을 줄이고 저렴하게 택지를 공급하면 그나마 참여 의사를 타진하는 시행사가 나타날 수 있지만 최근 시장 분위기상 파격적 조건이 아니면 예전처럼 입찰 참여도가 높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정부가 꾸준히 신규 주택 공급 시그널을 이어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정부가 공급 시그널을 멈추면 향후 금리 조정기에 부동산 가격이 다시 불안해지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시행사와 시공사들이 후속 사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악성 미분양을 해소하고 업체의 금융 활용 여력을 확보할 수 있는 보완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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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