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바이든에 '펠로시 대만 방문해도 美와 전쟁 안한다' 메시지 전해

지난달 말 바이든 미 대통령과 통화에서
방문시 예측못할 결과 있을 것 경고했으나
동시에 양국 "평화와 안정 유지 필요" 강조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하기 4일 전 시진핑 중국 주석이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지금은 전면적 위기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 번영을 위해 대만을 통제하는 것을 주요 과제로 제시해온 시 주석은 몇 달 동안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막으려는 외교 노력이 실패한 것에 화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28일 바이든 대통령과 통화에서 시 주석은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방문할 경우 예측할 수 없는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미국과 전쟁을 할 생각이 없으며 양측이 "평화와 안정을 유지"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주미 중국대사관의 류펭유 대변인은 정상 통화에 대한 질문에 "시 주석이 대만 문제에 관한 중국의 기본 입장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미 당국자들은 미국이 "하나의 중국" 정책을 고수하지만 미 의원들이 대만을 방문할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고 전한다.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떠난 뒤 중국은 며칠 동안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여 사실상 일시적으로 대만을 봉쇄하고 미국과 기후문제 등에서 협력을 중단했으며 양국간 군사접촉을 차단했다.

중국 지도부는 중국의 대응이 강압적이면서도 미국과 동맹국들의 대응을 촉발하지 않도록 조절한 것으로 사안에 밝은 당국자들이 전했다.

시 주석으로선 자신의 연임을 결정하는 올 연말 공산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안정을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중국의 대응은 미국과 관계를 긴장시켰고 동맹국들의 안보 불안을 자극했다. 아시아와 유럽 각국들이 중국 정부의 대응이 대만에 대한 직접적 압력을 강화하는 새로운 단계의 시작을 알리는 것으로 우려한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중국 전문가 주드 블랜치트는 "중국 정부가 갈수록 대만 압박을 강화할 것"이라면서 "이는 앞으로 몇 달 동안 미중 관계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펠로시 의장 대만 방문을 앞두고 바이든과 대화하는 것은 시 주석으로서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일이었다. 중국내 코로나19 봉쇄 조치 등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상황에서 힘을 보이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 주석은 결국 바이든 대통령과 통화해 미국과 충돌 위험을 최소화하기로 했다고 중국의 의사결정 과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 말한다.

중국 외교 정책 담당자들은 정상간 대화가 있은 직후 상대국이 중국의 이익에 반해 행동할 경우 체면을 잃을 것을 우려해 정상대화에 신중한 자세를 보여왔다.

2016년 시 주석이 워싱턴을 방문해 당시 오바마 대통령과 파리기후협약에 서명하기로 합의한 3개월 뒤 오바마 대통령이 달라이 라마 티벳 지도자를 백악관에서 만난 것이 한 예다. 이로 인해 정치적 역풍을 맞았던 기억이 중국 외교당국자들에게 남아 있는 것이다.

중국 당국자들은 지난 4월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계획이 처음 보도된 뒤로 미국에 경고해왔다. 펠로시 의장은 당시 코로나에 감염돼 방문계획을 연기했다.

중국 정부는 펠로시 의장 방문이 다른 정치인들의 대만 연쇄 방문으로 이어져 대만의 국제적 지위가 높아지면 독립을 선언할 것을 우려한다.

대만 통일을 목표로 삼아온 중국이지만 현재로선 대만이 정식으로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차단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시 주석의 다음 임기중 중국 외교 책임자로 내정돼 있는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책임자 류제이는 지난달 관영 인민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대만의 독립 분리주의 행동을 단호히 분쇄할 것"을 천명하는 대만문제 접근법을 제시했다. 그는 "평화 통일"을 기본 원칙으로 제시하면서도 무력사용을 배제하지 않았다.

지난 10일 대만사무판공실은 22년 만에 대만 백서를 새로 펴냈다. 이번 백서는 1993년 및 2000년에 발표한 백서에서 중국군대의 대만 진주를 배제한 대목을 삭제하고 대만이 중국의 "일국양제" 정책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몇 주 새 중국이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와 관련 주미중국대사관 류 대변인은 "중국이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주석 통화에서 대만 문제는 핵심 의제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의 정부, 의회, 사법부가 분리돼 있음을 설명하고 25년전 뉴트 깅리치 당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했음을 상기시켰다.

결국 두 정상은 소통을 지속하고 대면 회담을 갖기로 약속했다. 시주석이 연말 연임 뒤 대면회담이 열리면 시주석의 지위가 강화될 것으로 평가된다.

시 주석은 당장 미국과 긴장을 크게 고조시키지 않으면서도 국내적으로는 힘을 과시해야 했다. 중국 매체들이 대만 상공으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을 실시간 중계한 이유다. 민족주의 성향 인물과 학자들이 정부내 강경파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일부 외교정책 전문가들은 시주석이 연임한 뒤 한층 더 대담하게 미국에 맞설 것이며 대만을 압박하고 통제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스팀슨 센터의 중국책임자 윤선은 "시주석의 최우선 과제가 안정"이라면서도 "중국 정부는 아직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는 미국과 관계가 통제할 수 없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단기 전술일 뿐"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