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떠난 '달 탐사'..성공한 국가 6개뿐, 미국만 유인 착륙

다누리 5일 심(深)우주에서 지상국과 교신목표대로 항행하면 7번째 '우주탐사국' 도약미·러 경쟁으로 달 탐사 시작, 2000년대 개화

▲1972년 12월 미국항공우주국(NASA) 달 탐사.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는 1960년대 우주 경쟁으로 달아올랐다. 소련은 1957년 10월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했고, 1961년 4월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을 우주선에 태워 비행시켰다. 당시 미국은 이를 '스푸트니크 쇼크'로 규정하고 우주 기술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이듬해인 1962년 2월 미국은 우주비행사 존 글렌이 우주선으로 지구 궤도를 돌았고, 1969년 7월 마침내 인류 최초로 달을 밟았다.

그로부터 50여년이 흐른 지난 5일, 한국의 첫 달 궤도선이 우주로 날아올랐다. 1992년 8월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쏘아올린 지 30년 만의 일이다. 서구 열강에 비해 과학기술 역사가 짧았지만, 우주개발을 위해 숨 가쁘게 달려 온 결과다.

다누리는 미국 스페이스X의 팰컨9 우주발사체(로켓)에 실려 발사됐다. 지상국과 최초 교신은 우주로 떠난 지 1시간 32분 만에 이뤄졌다. 다누리는 앞으로 4개월 반 동안 약 600만㎞ 거리를 이동해 12월 말 달 근처 100㎞까지 다가갈 예정이다. 모든 비행이 정상대로 이뤄지면 한국은 미국·러시아·일본·중국·유럽연합(EU)·인도에 이은 7번째 달 탐사국으로 도약한다.


초창기 달 탐사는 옛 소련(현 러시아)이 주도했다. 1959년 달 탐사선 루나(LUNA) 1호를 달에 근접시켰고, 이때부터 1976년까지 LUNA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총 24회 중 15회 임무에 성공했다. 사람이 타지 않는 무인 우주선 루나 9호로는 달 착륙에 성공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우주 개척에 위기감을 느꼈던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당시 유인 달 착륙 프로젝트인 '아폴로 계획'을 선포했다. 과학계에 전권을 위임한 끝에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1969년 달에 착륙했다. 현재까지 유인 달 착륙에 성공한 국가는 미국 뿐이다.


미국은 2025년까지 달에 또 한 번 사람을 보내는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다. 단순히 달에 다녀오는 것을 넘어 장기 거주하는 게 목표다. 최종적으로 달을 거점 삼아 화성 등 심우주 탐사에 나선다는 목표다.

러시아와 미국에 이어 달 탐사에 나선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은 1990년 달 궤도선인 '히텐'(Hiten)을 발사했다. 당시 히텐이 달에 갔던 방식을 한국의 다누리가 참고했다. 히텐은 10번의 달 선회 비행에 나섰고, 2007년에는 달 탐사선 셀레네(일본명 카구야)를 발사해 월면 지도를 작성했다. 카구야는 달의 여신이라는 이름으로 1년 8개월간 과학탐사에 나섰고, 2년 뒤 달 남반구에 돌진해 최후를 맞았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 달 탐사에 뛰어들었다. 중국은 2003년 첫 우주비행사 배출을 시작으로 2007년에는 중국 첫 달 탐사선 창어 1호를 발사해 달 표면 3차원 지도를 작성했다. 창어 2호가 달 착륙 예정지 지도를 그렸고, 이를 기반으로 2014년 창어 3호가 달 착륙에 성공했다. 이어 2019년 창어 4호가 세계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하고, 2020년 달 시료를 지구로 가져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인도는 2008년 달 탐사선 찬드랴얀-1호를 발사했다. 이후 2019년 달 궤도선과 착륙선으로 구성된 찬드랴얀-2호를 발사했지만 착륙은 실패했다. 유럽은 2003년 달 궤도선 스마트-1호를 발사한 이후 차세대 발사 계획인 스파르탄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가 달 탐사에 나서는 이유는 우주가 과학기술을 넘어 경제·산업의 영역으로 꽃피우고 있어서다. 존 구이디 미국항공우주국(NASA) 우주탐사시스템부국장은 "1960년대 달 탐사가 국가적 도전이었다면 이젠 경제적·과학적 기회가 커지고 있다"며 "다누리는 매우 도전적인 프로젝트로, 미국이 달로 향하는 이유는 지구를 벗어나 우리의 존재를 태양계에 확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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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