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횡령·학살 후 도망갔던 '20년 독재자 아들' 대통령으로

두테르테 현 대통령 딸은 부통령으로..'민주주의 시계' 거꾸로 돌아갔다는 비판도 커

20년 '철권 통치'를 하고 각종 불법 횡령과 부정 축재, 민간인 고문·학살을 자행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인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65) 후보가 필리핀 신임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또 부통령은 현 두테르테 대통령의 딸이 당선됐다.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 후보가 9일(현지시간) 필리핀 일로코스 노르테의 바탁에 있는 마리아노 마르코스 기념 초등학교에서 투표를 끝마치고 손을 흔들고 있다.

이들 전·현직 대통령이 모두 필리핀 민주주의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긴 퇴행 정치 지적을 받는 만큼 자국 내외의 비판 여론도 만만찮다.

미국 ABC뉴스 등에 따르면 10일(현지시간) 대통령에 마르코스 후보가, 부통령엔 사라 두테르테 카르피오(44) 후보의 당선이 확정됐다. 새벽 5시 경 집계 결과에 따르면 오전 5시(한국시각 오전 6시) 기준 개표가 95% 가까이 진행된 상황에서 마르코스는 3015만217표를 획득해 대선 후보로 나온 2위인 레니 로브레도 현 부통령(1437만640표)을 두 배 이상 앞서는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

부통령에는 마르코스 후보와 러닝메이트로 출마한 사라 두테르테 후보(다바오 시장)가 당선됐다.

필리핀의 경우 공식 발표가 다소 지연되기도 하는데, 2016년 대선 때는 3주가 걸리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르코스 당선인의 아버지인 동명의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65년부터 1986년까지 20년간 철권통치를 한 독재자로 잘 알려져 있다. 계엄령을 선포하고 수천명의 반대파를 고문하고 살해하는 등 악명 높았다.

이후 다이아몬드와 현금을 채운 비행기를 타고 필리핀을 떠났지만, 돌아와서는 퇴진 약 35년 후 아들이 대통령에 당선되게 됐다.


두테르테 당선인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현 대통령의 딸로 필리핀에선 사실상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해 인지도가 높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6년 단임제 헌법 개정을 수차례 시도하는 등 민주주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려 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한편 마르코스의 대선 승리는 소셜 미디어를 통한 통제된 선거전략과 독재를 경험치 못한 젊은 세대의 지지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ABC뉴스에 따르면 마르코스 당선인은 대선 토론회를 건너뛰고, 선거 운동 기간 동안 언론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영향력 있는 인사들과 블로거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메시지를 제한하고 통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르코스 당선인이 그의 아버지의 권위주의 통치 기간 동안 부정축재, 권력남용, 약탈, 잔혹성에 대한 역사적 설명을 회피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변호하는 전국인민변호사연합은 선거 결과가 "쉽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라며 "사실은 소설보다도 더 기이할 수 있다"고 저격했다.

한편 투표 결과가 나오자 지지자들은 마르코스 선거본부 밖에 모여 깃발을 흔들며 "마르코스, 마르코스, 마르코스"를 외치며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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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