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강제 징집 피해라.. 줄 잇는 '러시아 엑소더스'

정부 '계엄령 선포설' 선 그었지만
반전 시위대 체포 후 파병 법안 발의
시민들 "정부 못 믿어"..탈출 행렬
서방 제재에 생활고도 발등의 불
"핵심 인재 유출, 국가 미래 어두워"

러시아 국민들이 대탈출(엑소더스)에 나섰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예상보다 고전하면서 정부가 일반 남성들에게 소집령을 내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탓이다. 서방의 초고강도 제재로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발등의 불이 되면서 낯선 나라를 향하는 행렬도 줄을 잇고 있다.


▲3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반전 시위에 참여했던 한 여성이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을 종합하면, 최근 러시아에서는 해외로 떠날 채비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구글의 통계 분석 서비스 구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지난 한 주간 러시아에서는 출국 방법을 논의하는 텔레그램 채널이 급증했다. 검색 엔진에서 ‘이민’을 검색하는 사람 수도 크게 늘었다. 모스크바 시내 비자 발급 센터 역시 해외로 출국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떠날까’ 수준을 넘어 실제 ‘떠나자’고 나선 사람도 적지 않다. 외국행을 실행에 옮긴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교통편은 이미 없어서 못 구하는 상태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국가와 러시아가 서로의 하늘 길을 막은 탓에 선택지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 그나마 열려 있는 이스탄불(터키) 베오그라드(세르비아) 예레반(아르메니아)행 항공 티켓은 동이 났다. 유일하게 티켓이 남은 두바이(아랍에미리트)행 항공편은 334달러(약 40만 원)에서 4,006달러로 10배 넘게 뛰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핀란드 헬싱키로 가는 기차표도 매진 상태다.

러시아인들의 엑소더스 배경으론 우선 군 소집령이 꼽힌다. 러시아 내에서는 최근 정부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장기화에 대비, 조만간 계엄령을 선포하고 젊은 남성들의 출국을 금지시킬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에 크렘린궁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 떠도는 사기극일 뿐”이라고 일축했지만, 강제 징집에 대한 두려움이 퍼지고 있다.


더욱이 이날 발의된 극단적인 법안은 이런 우려를 더욱 증폭시켰다. 안드레이 루고보이를 포함한 국가두마(연방의회 하원) 의원 2명은 이날 “무력 사용(전쟁)에 반대하는 미승인 공개 행사에 참가한 사람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ㆍ루한스크 지역 병역을 위해 파견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반전(反戰)시위 참가자를 체포해 전장으로 보내겠다는 의미다.

징집령ㆍ국경폐쇄를 우려하는 남성들이 앞다퉈 해외로 도주하는 것인데, 실제 중동행 티켓을 확보했다는 38세 남성은 “사기극이라고 말하는 크렘린궁을 절대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미 정부에 대한 불신도 극에 달했다는 얘기다.

연일 커지는 생활고도 국민들의 등을 떠밀고 있다. 서방이 초고강도 경제 제재로 러시아 경제 숨통을 끊은 가운데, 이날 루블화 가치는 사상 최저치에 도달했다. 생필품 가격은 치솟으면서 먹거리 사기는 점점 ‘하늘의 별 따기’가 되고 있다.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 카네기재단 선임연구원은 “이번 침공으로 양질의 인력들이 ‘러시아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며 대거 떠나고 있다”며 “이는 결국 국가의 몰락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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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