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부품 안 쓰면 고장?" 현대차·기아 8년간 '거짓광고'

공정위, 위법성 인정하고도 경고만 해 '봐주기' 비판 불가피
해외 시장용 차량과 표시 달라 국내 소비자만 '호갱' 논란도
현대차·기아 "조치 안 된 차종도 조속히 시정

공정거래위원회는 12일 현대차와 기아차가 차량의 취급설명서에 비순정부품은 품질ㆍ성능이 떨어지고 사용에 부적합하다고 표시한 것에 대해 거짓·과장의 표시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경고’ 조치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차량은 그랜저, 소나타, K5, 제네시스 등 현대차 24종, 기아차 17종이다.


▲ 현대차 쏘나타(LF) 취급설명서. 공정위 제공

공정위에 따르면 두 회사는 전방 범퍼, 소모품(전구, 좌석시트, 카 매트, 에어클리너 필터 등) 같은 부품을 쓸 때 현대모비스에서 생산한 순정부품이 아니면 위험하다는 식으로 소비자에게 과장ㆍ허위 광고를 한 혐의를 받는다. 이는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안정성과 적합성은 순정ㆍ비순정 여부가 아니라 안전ㆍ성능 시험을 통과했는지, 국토교통부의 인증을 받았는지 여부로 결정된다”며 “이들의 차량 설명서는 소비자가 비순정부품 사용을 부적합한 것으로 오인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는 순정부품 생산을 주문자위탁생산(OEM) 방식으로 개별 부품 업체에 맡긴다. 비순정부품은 순정부품이 아닌 부품을 말하는데 이중에는 현대모비스에 납품을 하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도 있다. 같은 공장에서 나온 부품이 순정ㆍ비순정부품으로 나뉜 것에 불과한데 차량 취급설명서에는 비순정부품은 위험하다고 적혀있다. 현대모비스에 납품하지 않는 부품 업체 중에서도 국토부로부터 순정부품과 품질이 유사하다고 인증 받은 곳이 많다. 국토부는 2020년 7월 기준 휀더, 본넷 등 120개 품목에 대해 이런 인증 제도를 운영한다.

순정부품은 비순정부품보다 가격이 높아 소비자의 부담이 더 크다. 한국자동차부품협회에 따르면 전방 범퍼의 경우 비순정부품의 가격은 순정부품 대비 대략 60% 정도다. 서울의 한 현대차 소유자 박 모씨(37)는 “휀더를 교체할 때가 돼 차량설명서를 읽어 봤더니 순정부품을 안 쓰면 나중에 탈이 날 수밖에 없다고 적혀 있었다”며 “비순정부품을 쓰기엔 겁이나 순정부품을 썼다”고 말했다.

두 업체가 거짓·과장 설명을 한 것도 문제지만 해외 시장에서 국내와 다른 행태를 보이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내와는 달리 해외에서는 ‘순정부품을 쓰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표현 대신 ‘모조품이나 위조품, 불량품을 쓰면 성능이 떨어지거나 고장날 수 있다’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 시장에 들어온 수입차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순정 부품을 쓰지 않으면 수리 보증을 하지 않겠다’고 할 뿐 비순정부품을 쓸 때 고장의 우려가 있다고 표시하지는 않는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모조품이나 위조품을 쓰지 말라는 정도로 권고하는 게 국제적인 기준이다”며 “현대차는 막상 외국에선 외국의 기준을 따르고 국내에서만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국내 대표 자동차 회사가 국내 고객만 ‘호갱(호구+고객님)’ 취급한다는 푸념이 나온다.

현대차와 기아는 이 같은 거짓 표시로 소비자들의 순정부품 구매를 유도해 큰 경제적 이익을 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여연대는 2019년 에어컨 필터, 전조등 등 6개 항목의 가격을 조사한 결과, 순정부품과 규격품이 유사한 품질에도 불구하고 최대 5배에 달하는 가격 차이를 보였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공정위의 제재 수위는 가장 낮은 경고에 그쳐 봐주기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로는 검찰 고발, 과징금 부과, 시정명령, 경고 등이 있다.

'공정위 회의 운영 및 사건 절차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법 위반 정도가 경미한 경우, 위반행위를 스스로 시정해 시정조치의 실익이 없다고 인정하는 경우 등에 경고를 의결할 수 있다.

공정위는 현대차와 기아에 경고 조치를 결정한 이유로 2000년대 초 수입산 가짜 부품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자 소비자에게 비순정부품의 사용에 대한 주의를 촉구하기 위해 해당 표시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다른 국내 사업자들도 유사 표시를 사용하고 있는 점, 2018년 11월 이후 출시된 신차종의 취급설명서에는 해당 표시를 삭제한 점 등도 이유로 덧붙였다.

하지만 팰리세이드, 스타렉스 등 일부 차종의 경우 여전히 취급설명서에 문제가 된 표시를 고치지 않았고, 위법 행위 기간이 더 길었음에도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상 처분 시효 때문에 8년 기간밖에 판단하지 못한 점 등을 고려하면 적어도 시정명령 조치는 내렸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정명령의 경우 피심인(기업)이 이행하지 않을 경우 검찰 고발조치가 가능하다.

실제로 이 사건을 다룬 소회의에서는 제재 수위에 대한 위원들 간 의견이 엇갈려 치열한 공방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기아는 "공정위 결정을 존중하며, 앞으로도 소비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며 "공정위 조사 전 대부분 (시정) 조치를 했음에도 실수로 빠진 부분은 조속히 시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외 시장과 표시가 다르다는 지적에는 "미국의 경우 자가 정비가 많아 모조품, 위조품 등의 표현을 썼지만 국내의 경우 대부분 정비업체에 위탁해 수리하기 때문에 비순정부품이란 표현을 썼던 것"이라며 "2019년 이후로는 국내에서도 비순정부품이라는 표현을 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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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