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역 역주행 참사, 급발진 아냐"…국과수의 판단엔 이유가 있다
시민 9명이 숨지고 5명을 다치게 한 이른바 '시청역 역주행 참사'.
운전자 차모(68)씨는 지난 7월1일 오후 9시27분께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오다 일방통행 도로를 역주행하며 인도로 돌진해 다수의 인명 피해를 낸 혐의를 받고 있다.
차씨는 사건 직후 줄곧 차량 '급발진'을 주장해왔다. "가속 페달을 밟지 않았는데도 차가 가속했고, 제동 페달을 밟았는데도 제동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에 넘겨진 차씨는 지난 11일 열린 첫 공판에서도 이 같은 주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지난 29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강원도 원주 본원에서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가진 정책 설명회에서 전우정 국과수 교통과장과 김종혁 감정관은 차씨의 주장을 거듭 반박했다.
국과수는 시청역 역주행 참사 감정 결과, 이번 사고를 급발진이 아닌 '운전자 과실'로 판단한 바 있다.
국과수에서 30년 가까이 교통사고 원인을 분석해온 전 과장은 "2022년 '강릉 손자 사망 급발진 의심 사고' 이후 급발진 주장 사고 감정 건수가 크게 늘었다"며 "하지만 실제 급발진 사고는 천문학적인 확률로 발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과수는 이른바 '시청역 급발진 주장 사건'의 운전자 주장을 토대로 이번 상황을 꾸몄다. 운전자 차모 씨는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줄곧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페달이 딱딱했고 작동하지 않았다"며 급발진으로 일어난 사고임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김 감정관은 이번 실험처럼 브레이크가 딱딱한 상태에서도 페달을 밟으면 정상 제동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차량 설계 구조상 구동장치에 문제가 생겨 이른바 '급발진'이 일어나도, 제동 장치는 별개라는 의미다. 김 감정관은 "급발진 상황이 원인 모를 이유에 의해 발생했다고 쳐도 제동 페달을 밟으면 차는 무조건 선다"며 "구동과 제동은 완전히 독립적인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감정관은 "제동 시스템은 차량 시스템에서 최후의 보루"라며 "엔지니어가 어떤 상황에서도 제동 페달을 밟으면 차가 정지하도록 설계를 했다. 가속과 제동 페달을 동시에 밟으면 가속페달 신호를 완전히 무력화하고 제동을 최우선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차량이 설계됐다"고 덧붙였다.
국과수는 실제 시청역 사고 차량으로도 이번과 같은 형식의 실험을 실시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입회하에 사고 차량 실험을 진행한 결과 제동에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 김 감정관의 설명이다.
국과수가 급발진 주장 사고와 관련해 운전자의 행위를 분석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가장 신뢰도가 높다고 평가되는 ▲사고기록장치(EDR·Event Data Recorder), 보급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페달 블랙박스, 고전적인 감정 기법이지만 시청역 사건 이후 조명을 받은 ▲가속 페달과 신발 문양 등이다.
이 중 자동차 에어백 제어 장치에 내장된 EDR은 일정 수준 이상의 충격이 발생하는 사고가 났을 때 사고 전후의 운행 정보를 기록한다. 자동차 속도, 엔진 회전수, 핸들 각도는 물론 가속 및 브레이크 페달 밟음 여부도 확인할 수 있다.
전 과장은 "일각에서는 EDR 기록 조작 가능성도 제기하지만, 롬(ROM)에 저장돼 있기 때문에 조작은 있을 수 없다"며 "또 엔진 제어기가 고장 나면 이 기록도 믿을 수 없다고 하는데, EDR은 여러 개의 제어기가 연동돼 있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국과수는 EDR 기록을 통한 차량 시뮬레이션도 진행하고 있다. 블랙박스 영상에서 보여지는 사고 상황과 시뮬레이션 상황이 일치한다면 EDR 데이터의 신뢰성은 충분히 확보됐다고 국과수는 판단한다.
페달 블랙박스를 통해 찍힌 가속 페달을 밟는 상황은 운전자들의 '오인'을 증명하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국과수가 공개한 주요 급발진 주장 사고의 페달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운전자들은 모두 브레이크 페달이 아닌 '가속 페달'을 밟고 있었다. 전 과장은 "급발진이 나에게 일어났다고 오해하면 밟고 있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못 뗀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