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12명 ‘이탈 0’ 국립나주병원… 환자들 “자리 지켜줘서 너무 고맙다”
“의사들이 파업 중인데 왜 우리 병원엔 의사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나요?”
지난 18일 오후 2시 우리나라 최남단 국립정신병원인 전남 나주시 산포면 국립나주병원 내 급성기 병동. 입원 환자들에게 치료 필요성과 방법을 매주 설명하는 ‘질병관리교육’ 시간에 환자 A 씨가 질문을 던졌다. 수업을 진행하던 김영수 간호사는 즉답을 피했다. 교육을 마친 후 김 간호사는 문화일보 기자에게 개인 의견을 전제로 “전공의들이 본인 자리를 지킨 것이라고 본다”며 “입원 환자 상태를 실시간으로 봐야 해 전공의들이 그런 결정을 내린 듯하다”고 답했다. 이 병원 전공의 12명은 급성기 병동에서 수련을 받고 있다.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 1만여 명이 지난 2월 19일부터 집단 사직해 3개월째 의료 공백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 병원 전공의들은 단 한 명도 이탈하지 않았다.
이곳 입원 병동에서 환자들은 안정감을 느끼면서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환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노래방 시설을 이용하거나 탁구를 하곤 했다. 야외엔 의료진과 환자들이 함께 가꾼 텃밭도 꾸며져 있다. 원예요법의 일환이다. 이 병원 병상 수는 195개인데 16일 기준 65명이 입원해 있다. 의사 수는 총 22명이다. 전문의와 전공의 충원율은 각각 83.3%, 100%다. 다른 정신병원에서는 볼 수 없는 높은 수치다. ‘의사 공무원’인 이들 평균 연봉은 지난해까지 1억 원을 밑돌았다. 국내 의사 평균 연봉은 지난 2022년 3억 원을 돌파했다. 이곳 병원 전문의들 평균 연봉은 올해 처우 개선 차원에서 많이 올랐지만 1억5000만 원 안팎이다. 명예와 부가 따르는 의대 교수와 달리 이들은 이름도, 빛도 없이 환자 곁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등 국가재난 상황에서는 가장 먼저 최일선에 동원되는 이들이기도 하다.
윤보현(사진) 국립나주병원장은 의료진이 잘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로 ‘상호 신뢰’를 가장 먼저 꼽았다. 윤 원장은 “전공의들과 라면도 같이 끓여 먹고 치맥도 먹으면서 서로 부대끼는 시간이 아주 많았다”며 “요즘 ‘꼰대’랑 잘 안 놀아주는데 아버지뻘 되는 원장과 같이 밥을 먹어줘서 너무 고맙기도 하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불참한 이유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최근 의사집단 내에서 사직하지 않은 전공의를 배신자로 낙인 찍는 만큼 전공의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의료계에 따르면 윤 원장은 이번 집단 사태가 터지기 전 의료 상황이 안 좋아지면 국립병원이 역할을 제대로 해줘야 한다고 의사들을 다독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원장은 이곳 병원에서 공보의를 마친 후 1994년 5월 의무사무관(5급)으로 시작해 30년 동안 이 병원을 일궜다.
의사를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지역인재 전형을 꼽았다. 윤 원장은 “우리 전문의들은 다 우리 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전문의를 딴 후 여기 남은 분들”이라며 “요즘 지방 의대는 전국구인데도 광주·전남이 고향인 의대생이 지역병원에서 수련 받는다면 이곳에서 의사생활을 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고 말했다.
양극성 장애로 두 번째 입원한 환자 B 씨는 “원장님을 주축으로 의사와 간호사들이 환자 치료에 중점을 두고 있어 너무 고맙다”며 “전공의들이 만약 의사단체에 협조했다면 이곳도 마비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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