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개악 넘어 대참사 될 것"…연금개편, 적자 702조 늘어난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이하 공론화위)가 '더 내고 더 받는' 안을 선택했다. 김상균(서울대 명예교수) 공론화위 위원장은 22일 공론화위 시민대표 500명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시민대표들은 4회 토론회를 열었고 21일 4차 토론회 후 두 가지 개편안 중 중 하나를 선택했다. 다수의 선택을 받은 건 1안이다. 보험료를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생애소득대비 노후연금의 비율)을 40%에서 50%로 올리는 것이며 소득보장에 중점을 둔 안이다. 2안은 보험료를 9%에서 12%로 올리고 대체율은 현행(40%)대로 유지해 재정안정에 집중한다.
국회 연금특위는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개혁안을 만들어 21대 국회 회기(내달 29일) 안에 통과시켜야 한다. 하지만 1안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지지하고, 국민의힘과 정부는 부정적이다. 연금특위 야당 간사인 김성주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 통화에서 "이번 결과를 보면 국민이 소득보장이 이뤄진 상태에서 재정안정을 기하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며 우리 당의 오랜 철학"이라며 서둘러 입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여당 간사인 유경준 의원은 "국민연금·기초연금·퇴직연금 등의 연금체계를 바꾸는 구조개혁이 선행돼야 한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미래를 위한 지속가능한 연금개혁이 이뤄지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완곡하게 반대 입장을 표했다.
시민대표 토론회에는 1,2안 전문가가 참석해 취지를 설명했고 시민들과 질의응답을 주고받았다. 토론회 전에는 2안 찬성이 높았으나 뒤집어졌다. 공론화 방식의 연금개혁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금개혁 같은 난해한 과제를 공론화 방식으로 하는 게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수완 강남대 교수는 3차 토론회에서 "시민대표단이 보다 확실한 자료를 학습하고, 그 내용이 맞는지 전문가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시민대표는 4차 토론회에서 "두 안의 지표들이 너무 달라서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1안대로 하면 기금고갈 시기가 2055년에서 2061년으로, 2안은 2062년으로 늦춰진다. 보험료도 각각 13%, 12%로 비슷하게 오른다. 별 차이가 없는데, 소득대체율은 1안이 50%, 2안이 40%로 크게 차이 난다. 부담과 기금 상황이 비슷한데도 혜택은 1안이 훨씬 커 보인다.
1안 찬성이 높게 나온 배경이다. 1안의 목적은 연금액 올리기이다. 그러나 소득대체율을 올려도 효과가 그리 크지 않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평균가입기간이 20.3년에 불과해서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려도 효과가 40년 후에 나타나고, 정규직 고소득 근로자가 혜택을 많이 보게 돼 정의롭지 않다"고 지적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에 따르면 1안대로 하면 지역가입자 평균소득(100만원, 25년 가입 가정) 근로자는 연금이 월 12만5000원 늘지만 600만원 소득의 근로자는 28만원 오른다. 양 교수는 "1안이 재정 안정에도 역행해 후세대 부담만 더 늘리는 개악안"이라며 "연금을 늘리려면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 확대, 출산 크레디트(가입기간 추가 인정제도) 확대 등으로 가입기간을 늘려주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연금 개혁 과정에서 시민대표단의 공론화는 끝이 났지만 모든 절차가 완료된 것은 아니다. 향후 국회에서 여야 합의를 통해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입법 과정에 이번 공론화 결과가 그대로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김상균 공론화위원장은 "공론화위는 어떤 결정을 내릴 수도 없다. 결정을 내려봐야 입법권이 없어서 최종 결정이라고 볼 수가 없다"며 "따라서 참고자료이고 지나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거쳐서 마지막 입법권 갖고 있는 국회가 결정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 보수 진영에서는 재정 안정화를 중요시한다.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 자문 역할을 하는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지난해 최종 보고서에서 최대 24개의 시나리오를 제시했는데 이중 18개가 재정 안정화, 6개가 소득 보장 강화 방안이었다. 당시 위원회 내부에서 재정 안정화 방안을 '다수안'으로 표기하자는 안건에 '소득보장론' 측 의원들이 이에 반발하며 사퇴를 하기도 했다.
지난 2018년 대입 개편 공론화 과정을 보면, 당시 공론화 결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위주 전형 45% 이상 확대하는 안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으나 교육부는 정시 비율을 30% 이상 확대로 결론 내린 바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0월27일 발표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과 함께 국회에 제출한 국민연금 개혁 관련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20~59세 성인 국민연금 가입자 2025명 중 가장 많은 38%가 보험료를 더 내고 급여를 더 받는 방향성에 동의했다. 보험료를 더 내고 급여는 현재 수준을 유지하는 방안에는 21%가 찬성했다.
공론화 절차는 마무리됐지만 연금개혁은 입법을 해야 완성이 된다. 공론화위는 이번 공론화 설문조사 결과를 두고 분석과 해석을 거쳐 심도 있는 보고서를 늦어도 다음 주까지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국회는 보고서를 검토한 이후 여야 합의를 거쳐 입법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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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