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한목소리’ 어디갔나…의협, 총선 후 합동 기자회견 취소

의료계의 ‘한목소리’를 내겠다며 의욕을 불태웠던 대한의사협회(의협)가 내부 분열, 전공의 단체와의 갈등 등으로 삐걱거리고 있다. 연일 이어지는 내분 논란에 오는 12일 예정됐던 의협·전공의·의대생·교수단체의 합동 브리핑마저 취소됐다. ‘단일 대화 창구’를 만들어 정부와 대화에 나서겠다는 목표는 당분간 이루기 힘들게 됐다. 의정(醫政) 대화는 교착 상태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의대 정원 증원 저지를 위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김성근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홍보위원장은 9일 브리핑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과 조율이 덜 돼 이번 주로 예정됐던 합동 기자회견은 시기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지난 7일 회의를 거쳐 총선 직후 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전국의대교수 비대위와 함께 정부의 의대 증원에 대한 통일된 입장을 밝히는 회견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었다.

이에 정부가 요구하는 의료계의 ‘단일 대화 창구’가 마련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커졌고, 의정 대화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마저 제기됐다.

하지만 이는 전공의들과의 합의에 기반한 것이 아닌, 의협만의 입장임이 드러났다. 전날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이날 의협 비대위는 “전공의 단체 내부에서도 논의가 있어야 하고, 대전협 입장을 확인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가능하면 빠른 시일 내에 모여서 의견을 말씀드릴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에도 혼선이 있고, 서로 간에 대화 준비가 부족해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의협은 의료계의 통일된 안은 ‘의대 증원 원점 재논의’라고 재차 강조했다. 김성근 위원장은 “통일된 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숫자를 제시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며 “(의대 정원을) 늘릴지 줄일지 미리 결정하지 말고, 2000명 결정은 불합리하고 부당하니 충분히 시간을 들여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협 비대위는 ‘강경파’로 여겨지는 임현택 차기 의협 회장과도 갈등을 빚고 있다. 전날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도와는 달리 비대위 운영 과정에서 당선인의 뜻과 배치되는 의사 결정과 대외 의견 표명이 여러 차례 이뤄졌다”며 비대위원장직을 임 당선인에게 넘기라는 공문을 비대위에 보냈다.

이에 이날 김 비대위원장 측은 반대 입장문에서 "당선인은 현재 비대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어 비대위 회의 석상에서 발언을 한다면 충분히 반영될 수 있으나 보도자료를 통해 의사를 밝히고 있는 점은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또 "규정에 따르면 비상대책위원회의 구성은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의 권한이며 대의원회의 위임을 받아 운영위원회가 현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선출했다"며 "운영규정의 내용상 비대위의 해산 또한 전적으로 대의원회의 권한"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비대위는 인수위를 향해 "이러한 규정을 벗어난 주장을 하는 것은 바로 지금 정부가 밀어 붙이는 정책과 같이 절차를 무시한 무리한 주장과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

이날 비대위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를 신뢰한다는 입장 또한 재확인했다. 이 역시 대통령과 단독 대면한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에 비판적 입장을 보인 임 당선인 측과 대비된다.

비대위는 "첫 회의 때 천명한 바와 같이 전공의들이 정부에 제시한 대화 조건을 존중하고 활동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어떠한 변화도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밝힌다"며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을 신뢰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는 출범 당시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편 의협 비대위는 당초 총선 이후 오는 11~12일로 예정했던 대전협과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와의 합동 기자회견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뉴스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