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2천명 백지화'만 요구말고 근거갖고 국민 설득해야"
'의대 증원' 문제로 촉발한 의사와 정부의 갈등이 6주째 이어지면서 환자와 국민의 피로도가 극에 달하고 있다.
정부는 의대 증원을 포함한 모든 안건을 논의할 수 있다며 의료계에 대화를 제의했지만, 의료계는 '2천명 증원 백지화'를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며 사실상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환자단체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의료계가 국민을 납득시키려면 합리적인 근거와 주장을 가지고 정부를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공의 집단사직이 장기화하면서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정부의 대화 제의는 27일에도 이어졌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전공의는) 책임 있는 대표단을 구성해 정부와의 대화 자리로 나와 주시기를 바란다"며 "대화를 위한 대표단 구성은 법 위반 사항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대 교수님들께도 당부드린다"며 "정부를 믿고 대화의 자리로 나와 건설적인 논의를 함께해나갈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의료계는 '2천명 증원 백지화'를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고 있어 정부와 의료계가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의대 입학정원을 오히려 줄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전날 대한의사협회(의협)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임현택 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저출생을 근거로 들며 "의대 정원을 500∼1천명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당선인은 "정부가 원점에서 재논의할 준비가 되고, 전공의와 학생들도 대화할 의지가 생길 때 협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주부터 집단사직서 제출과 외래진료 축소에 나선 의대 교수들도 '2천명 증원 백지화'를 대화의 조건으로 들고 있다.
울산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성명에서 "사직서가 수리되기 전 정부가 2천명이라는 근거 없는 족쇄를 풀고 진정성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균관의대 교수 비대위도 사직서 제출 계획을 밝히며 '무리한 의대증원 정책추진 중단'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의대생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도 정부의 의대 증원 계획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의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의료계 일각에서 의대 정원을 점진적으로 늘리자는 등의 대안이 나왔지만, 대표성 있는 단체가 없는 의료계에서 주관적인 의견으로 치부되며 힘을 받지 못했다.
앞서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는 국회 기자회견에서 '의대 증원을 1년 뒤에 결정하고 국민대표와 전공의가 참여하는 대화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지만,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자신들의 요구사항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홍승봉 대한뇌전증센터학회 회장은 "10년 동안 의료시스템이 한국과 비슷한 미국, 일본, 대만 의대 정원의 평균값인 1천4명 증원으로 속도를 조절하자"고 제안했지만, 공론화되지 못했다.
정부와 의료계가 의미 있는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환자의 고통과 국민 피로도만 악화하고 있다.
정부가 염두에 둔 '의료계 대표단' 관련 질의엔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도록 구성돼야 할 것"이라며 "합리적 대안들을 다양하게 건의해 주시면 정부가 검토 의견을 드리고 소통과정을 통해 안(案)을 구체화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앞서 전날 국무회의에서 2025학년도 예산안 편성 지침을 의결한 정부는 보건의료 분야를 안보·치안 등과 같은 반열에 두고 '과감한 재정투자'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복지부는 특히 중점 투자 분야로 '필수의료 육성 및 지역거점병원의 공공성 확대'가 포함됐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전공의 수련 내실화 및 처우 개선을 기반으로 의대정원이 대폭 증원된 지역 국립대 등에 재정을 집중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지역의료발전기금'을 신설해 거점병원과 관내 강소병원을 육성 지원하기로 했다. 지역 내 인력 공유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의료기관 간 연계를 위한 디지털 전환도 추진한다.
이와 함께 어린이병원, 화상치료, 수지접합 등 저출산이나 질환 특성상 수요가 적으나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필수의료에 대해 사후보상 확대 등 새로운 보상체계를 도입한다. 정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의료사고처리특례법 관련 전공의의 책임보험 공제비용은 절반을 지원한다.
지역의 중심이 되는 대학병원의 연구기능 강화, 혁신형 보건의료 연구·개발(R&D) 예산 지원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 5대 사업의 안정적 재원 확보를 위해 '필수의료 특별회계'를 신설, 운영할 계획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참모진에게 내년도 의료예산을 의료계와 함께 논의할 것을 제안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의대정원 증원분(分)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이미 쐐기를 박은 상태에서, 일종의 당근책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안철수 의원 등 여당 내에서도 '2천 명' 또한 대화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정부는 "(증원규모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박 2차관은 "최근 대화 제의가 있기 이전에도 정부는 모든 것을 논제로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다만 2천 명을 결정한 것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합리적으로 결정한 것"이라며 "정부는 2천 명(증원)의 의사 결정에 대해선 확고한 생각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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