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때 軍수사권 박탈됐는데... 민주당, 이제와서 “해병대 수사에 외압”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인천국제공항 기자회견에서 “이종섭 주(駐)호주 대사는 ‘수사 외압’의 핵심 피의자”라며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등이 어떻게 ‘수사’에 개입했는지 등을 수사하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작년 9월 이종섭 대사가 국방부 장관 재임 시절 고(故)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고 외압을 가했다며 그를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와 군 안팎에선 “문재인 정부 때 민주당 주도로 ‘군수완박’(군 3대 범죄 수사권 완전 박탈)을 해놓고 이제와서 ‘수사 외압’을 주장하니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군은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22년 7월부터 ‘3대 범죄’(군인 사망 관련 범죄, 성범죄, 입대 전 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박탈당했다. 국회가 2021년 8월 31일 민주당 주도로 군사법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이 법안은 그동안 군사법원의 재판 대상이었던 3대 범죄 사건을 1심부터 일반 법원이 관할하도록 바꾸고, 이에 따라 군이 3대 범죄의 수사 권한을 민간 수사기관에 넘긴다는 게 골자였다.
수사·기소·재판이 모두 군 내부에서 이뤄지던 기존 법 체계가 피해자 인권 보호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민주당, 민변 등이 논의를 주도해 통과시킨 법안이었다. 당시 국회 본회의에는 의원 227명이 군사법원법 개정안 표결에 참여했고, 그 가운데 135명이 찬성했다. 찬성 인원 중에서 114명이 민주당 의원이었다. 이 법안은 2021년 9월 공포됐고 2022년 7월부터 시행됐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은 작년 7월 19일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과정에서 발생했다. 당시는 이미 민주당 주도로 개정 법이 시행돼 군인 사망 관련 범죄에 대한 군의 수사권이 박탈된 뒤였다.
하지만 박정훈 대령이 지휘하던 당시 해병대 수사단은 사건 발생 14일 만에 관련자와 참고인 등 90여 명을 불러 진술을 받고, 사망진단 관련 서류와 사망 원인 조사 보고서 등 수사 기록 980여 쪽을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는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수사 결과 보고까지 포함됐다고 한다. 박 대령은 그해 7월 28일과 30일 이 같은 수사 기록을 해병대와 해군, 국방부 지휘부에 각각 보고했다고 한다. 이후 해병대 수사단은 그해 8월 2일 사건을 경찰에 이첩했다.
민주당 주도로 개정·제정된 군사법원법과 대통령령에 따르면, 이럴 경우 해병대 수사단은 채 상병 사망 사건을 수사할 권한 자체가 없다. 군 수사관은 검찰·공수처·경찰·해경 등 민간 수사기관에 지체 없이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 이때 관련 서류와 증거물 등을 함께 보낼 수는 있다. 한 법조인은 “법령 조문상 ‘사람(혐의자)’을 이첩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사망 사고)’을 즉시 이첩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해병대 수사단은 권한도 없는 수사를 사실상 다 끝내놓고 혐의자까지 특정한 뒤 경찰에 넘긴 것인데 이는 월권(越權)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국방부 조사본부는 경찰에 넘어간 수사 기록을 회수한 뒤 그해 8월 21일 “법적 검토 등을 통해 직접적인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된 2명은 인지통보서를 작성해 경찰에 이첩했고, 문제가 식별된 4명은 각각의 사실관계를 적시해 사건기록 일체를 경찰에 송부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이종섭 대사가 재임하던 당시 국방부가 경찰로 넘어간 수사 기록을 회수하고 사건을 재이첩한 과정 자체가 “수사 외압” “수사 방해”라면서 이 대사,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 등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작년 9월 공수처에 고발했다. 직권남용 죄는 직무 권한을 가진 공직자가 그 권한을 남용해 다른 사람에게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 행사를 방해해야 성립된다.
한 법조인은 “민주당 주도로 법이 개정돼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권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는데, 국방부가 도대체 어떤 ‘수사’를 방해했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며 “민주당이 법안 처리를 주도해 군에 수사권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을텐데도 ‘수사 외압’을 주장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애당초 직권남용 혐의의 원인이 되는 전제 사실(수사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혐의를 두기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채 상병 사망이 현장 지휘관 등의 업무상 과실치사에 해당하는 것인지는 수사 권한이 있는 경북경찰청이 수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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