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라이벌이자 2인자, 리커창의 쓸쓸한 죽음

중국의 리커창 전 국무원 총리가 10월27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국영 CCTV가 밝혔다. 향년 68세.

CCTV에 따르면, “리커창 동지는 상하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10월26일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리커창 동지를 회복시키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했으나 그는 10월27일 자정을 10분 넘긴 시점에 사망하고 말았다.”


▲ 지난 2018년 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을 만나 악수하는 리커창 당시 국무원 총리.

리커창은 ‘시진핑 1기’가 시작되던 2013년 3월부터 10년 동안 국무원(중국의 내각) 총리로 일했다. 베이징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990년대 말부터 허난성(省), 랴오닝성 등의 성장(한국의 도지사 격)을 맡아 경제개발을 추진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공청단(중국 공산당의 청년조직인 중국공산주의청년단) 출신이며 실용주의 성향으로 알려진 그는 같은 파벌인 후진타오 전 주석 및 공산당 총서기의 후계자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태자당(중국 혁명 원로의 자식들로 구성된 파벌) 출신인 시진핑에게 밀려나면서, 중국의 ‘2인자’로 통하는 국무원 총리에 만족해야 했다.

시진핑에 대한 리커창의 패배가 최종적으로 확정된 것은 지난해 10월 중국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였다. 중국과 세계의 격변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이 대회에서 지명되는 상무위원회(중국공산당의 최고 지도부) 위원 7명 가운데 공청단 계열이 다수 포함되기를 원했다.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침체된 중국 경제를 회복시키는 한편 미·중 관계 악화로 훼손된 글로벌 공급망을 복원하려면 상무위에 실용주의자가 필요하다고 봤던 것이다.

그러나 상무위원 7명이 모두 ‘시진핑 충성파’로 구성되면서 리커창 등 공청단 출신들이 권력의 핵심부에서 퇴출당했다는 사실이 재차 확인되었다. 공청단의 얼굴인 후진타오 전 총서기는 전국대표대회 폐막식에서 시진핑의 옆자리에 앉아 있다가 두 명의 수행원에게 팔을 잡혀 끌려 나갔다.

시진핑이 강행한 극단적 방역 정책인 ‘제로 코로나’ 당시, 리커창은 한때 라이벌이었던 최고지도자의 눈 밖에 날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2020년엔 “중국 인민 가운데 6억 명 이상의 한 달 소득이 140달러 미만”이라고 말해 소득 불평등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키는가 하면 과도한 방역으로 민생경제가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리커창은 지난 3월 현 리창 국무원 총리에게 직무를 넘겨주고 퇴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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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