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경 쓸데없이 받지 말라" 권고하고 나선 소화기내과 의사들… 이유는?


내시경 검사만큼 한국인에게 친숙한 검사도 없다. 당장 집 앞 병원만 가도 쉽게 내시경 검사를 받을 수 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암을 조기발견하기 위해, 몸에 이상이 없어도 1~2년마다 괜히 검사받곤 한다. 그러나 정작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에선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한다. “불필요한 검사를 받지 말라”고까지 한다. 환경 오염이 그 이유인데, 내시경 검사가 환경과 무슨 관련이 있길래 그런 걸까.


◇일회용품 없이 검사 못 해… 재활용 불가 의료폐기물 생산


내시경 검사의 안전성은 일회용품이 뒷받침한다. 의료진이 착용하는 장갑과 앞치마, 내시경 장비, 채취한 조직이 암인지 판단하는 조직검사 장비에 이르기까지 검사의 모든 과정에 일회용품이 쓰인다.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Green Endoscopy TF(녹색 내시경 특별전략팀) 차재명 팀장(강동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은 “과거엔 용종을 제거할 때 사용하는 올가미나 조직검사에 사용하는 겸자(의료용 집게)를 소독해서 재사용하기도 했었다”며 “그러나 장비를 재활용하면 감염 위험이 있어 최근엔 일회용을 쓰는 추세”라고 말했다. 실제 실험 결과, 생검겸자(biopsy forceps)가 소독·멸균처리 후에도 재사용하기에 안전하지 않았다는 캐나다 의료기술평가원(AETMIS) 보고가 있었다.

내시경 검사를 시행할수록 환경 부담도 커진다. 검사에 사용된 일회용품들은 재활용 불가능한 의료폐기물로 분류돼 매립된다. 미국의 경우, 내시경 검사를 한 번 수행할 때 2.1kg의 의료폐기물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한 해에만 축구장 117개에 각각 1m씩 쌓일 만큼의 의료폐기물이 발생한다. 한국은 2021년 기준 위·대장내시경 검사·시술 건수가 약 633만 건으로 추산되며, 내시경 검사·시술로 발생한 플라스틱 폐기물은 9498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만 톤으로 추정된다. 탄소가 많이 배출될 수밖에 없다. 환자·보호자가 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할 때 연료가 필요하고, 의료기기와 시설을 소독하는데도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검사 건수가 많다는 게 가장 결정적이다.

◇‘정석대로’ 검사주기 지켜야 폐기물 감소


그렇다면 검사 건수는 왜 이렇게 많은 걸까. 건강을 염려해 필요 이상으로 검사를 자주 받는 게 이유다. 현재로선 용종절제술을 받은지 3~5년 후에 대장암 예방을 위한 추적 검사를 받을 것이 권장된다. 제거한 용종의 유형과 양상에 따라 권고 시기는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환자 대부분이 권고 시점보다 일찍 내시경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와 대한장연구학회가 국내 의사 13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환자의 최소 36.1% 최대 83.5%가 권고 시점보다 빨리 대장내시경을 받고 있었다.

건강한 사람들도 대장내시경을 불필요하게 많이 받긴 마찬가지다. 국내외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가족력·이상 증상이 없는 건강한 사람은 45~50세부터 대장암 검진을 시작하고, 이상이 관찰되지 않았다면 5년마다 재검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한국엔 1~2년마다 대장내시경을 받는 사람이 많다.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윤리법제위원회 박동일 이사(강북삼성병원)는 “직장인 건강검진에 대장내시경 검사가 포함된 경우가 많아 1년에 한 번씩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불필요하게 자주 받는 것”이라며 “5년에 한 번씩 받아야 환경 부담이 줄고, 의학적으로도 가장 효율적이다”고 말했다.

내시경 검사에 일회용품을 안 쓸 순 없다. 불필요한 검사 건수를 줄여, 검사에서 발생하는 의료폐기물의 양을 줄이는 게 최선이다. 이것이 내시경학회에서 시작한 친환경 운동의 골자다. 지난 2022년 유럽소화기내시경학회에선 여기 더해 입원보단 외래 검사를, 검사 시엔 재활용에너지를 사용하길 권하는 ‘녹색 내시경(Green Endoscopy)’ 지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역시 병원 이동 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병·의원이 2~3층에 있으면 계단을 이용하거나, 의료 기관 방문 시 텀블러를 휴대하길 권장하고 있다.

◇병원의 친환경 활성화 ‘의료계 리더’ 관심 절실



기후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지만, 의료계에서만큼은 ‘환경’이란 주제가 여전히 소외당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가 특별전담팀(TF)을 꾸려 친환경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Green Endoscopy TF(녹색 내시경 특별전략팀) 차재명 팀장은 “일찍이 친환경 운동을 시작한 유럽소화기내시경학회에 참석해보니, 학회차원에서 나무 심기 행사도 열고, 참석자에게 의례적으로 나눠주는 플라스틱 가방의 양을 줄이는 운동도 하고 있었다”며 “한국 학회에서도 친환경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와중,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이사장 주도로 ‘Green Endoscopy TF(녹색 내시경 특별전략팀)’을 구성해 친환경 홍보 활동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의료계에서 ‘친환경’의 가치는 아직 입지가 불안정하다. 환경을 오염시키지만 명의가 있는 병원과 친환경이지만 명의가 없는 병원 중 선택을 해야 한다면, 회복이 간절한 환자들은 당연히 후자로 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에만 신경 쓰다 보면 의료의 품질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주삿바늘 재사용이 대표적이다. 주삿바늘은 환경을 오염시키는 대표적인 의료폐기물이지만, 그렇다고 환경 오염을 줄이려 이를 재사용할 순 없다. 친환경을 하려다 혈액 매개성 감염병이 전파될 수 있어서다.

이것만 보면 의료와 환경은 동행할 수 없는 가치이며,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할 것만 같다. 우선순위에 서는 건 늘 의료이기에 의료 분야 친환경 가치 실현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의 이번 행보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다. 의료계 ‘권위자’가 환경에 관심을 가지면, 그의 영향력에 힘입어 친환경 행보가 지속된다.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김정학 교수(한국ESG협회 이사장)는 “의료계의 ESG 경영이 활성화되려면 ‘명의’, ‘병원장’ 등 의료계 리더가 친환경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의료기술이 고도로 발달해 병원들의 치료 능력이 상향 평준화되면, ‘친환경’ 여부가 병원의 차별점이 될 것”이라며 “의사들도 경쟁력을 갖추려면 장기적으로는 친환경에 대해 고민하고,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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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