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나온 교사들 "우리가 원하는 건 낡아빠진 옛날 교권 아니다"

"교사가 교권 침해 보험 상품을 가입해야 한다는 이 현실이 정상적인 것입니까!"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교권 붕괴' 현실을 호소하는 현직 교사의 목소리에는 울분이 가득했다. 뜨거운 바닥에 앉아 발언을 듣던 교사들은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인근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일선 학교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공교육정상화를 위한 전국 교사 일동'은 22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현직 교사 5000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했다.

거의 모든 참석자들은 미리 공지된 대로 검은색 옷을 입고 집회에 나왔다. 직종의 특성상 여성 참여자가 더 많았다. 주최 측은 특정 단체와 정치 성향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사망한 초등학교 교사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한 이날 집회에서 교사들은 교육 현장에서 교사 인권과 교육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토로했다. 각자가 겪은 경험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교권 보호를 외쳤다.

종각 거리로 검은 옷 입고 모인 5000여 교사들
"언제 이 아이와 학부모가 돌변할지 모른다는 걱정"


경기도에서 근무하는 2년차 초등학교 교사 A씨는 모두발언에서 "(S초 교사 사망사건이) 누군가에겐 그저 한 사람의 죽음일 수도 있겠으나 그 죽음이 나를 향하게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을 교직에 있는 모두는 알고 있다"며 "수업을 방해하고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아이를 타이르고 상담도 해보지만, 언제 이 아이와 학부모가 돌변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교사도 사람으로서 존중받고 안전하게 교육할 수 있는 교실을 만들어야 한다"며 "교육이 더 무너지기 전에,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기 전에 바로잡아야 한다, 아이들을 위해 그들을 가르칠 선생님을 위해 그 속에서 피어날 교육을 위해 부디 목소리를 함께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수도권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9년차 교사 B씨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낡아빠진 옛날의 교권이 아닙니다. 교사의 인권과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며 "신규 교사가 목숨을 잃었다, 교사에게 권위가 아닌 존중을, 교사에게 권력이 아닌 인권을 보장해 달라, 교사가 교육자로 있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강조했다.

자유발언에 나선 교사들은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교권 침해사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교권 보호를 호소했다. C씨는 "초임교사 시절, 남의 아이 잘못만 1시간 이야기하는 그들(학부모)을 보면서, 내가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해서 학폭으로 번지지 않을 수만 있다면 이 정도는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고, 한 학기 동안 받은 민원은 너무 많아 기억도 나지 않는다. 웃음기가 사라진 채 점점 영혼도 썩어가는 느낌으로 교직 생활을 이어갔다"고 했다.

이어 "(얼마 전) 저희 반 남자 학생들이 공공연한 성희롱을 했고, 성희롱 민원에 예민해져 있던 저는 그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크게 소리를 쳤다. 그리고 그날 바로 학부모 민원을 받았다"며 "이 정도가 민원이 없는 학교에 속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사가 정당한 생활 지도를 할 수 있게 해달라, 학생들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본인의 의무와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쏟아지는 자유발언 "소수의 특수한 케이스 아니다"
"악성 민원, 무력감, 미안함... 우리 손으로 바꿔야"


서울 강동구에 근무하는 6년차 교사 D씨는 "시도 때도 없는 민원, 심리적 압박을 주는 민원, 교사에게 모욕감을 주는 말이나 행위, 신체적 폭력, 이런 교권 침해가 수도 없이 발생한다"며 "교권 침해는 소수의 특수한 케이스가 아니다. 매 학기, 어느 학교에서나 발생하고, 우리 교사들에게는 일상적인 일이다"라고 호소했다.
그는 "교권을 제도적으로 보호받지 못해서 교권 침해 보험 상품을 가입해야 한다는 이 현실이 정상적인 것인가"라고 반문하면서 "학생 인권, 학부모 인권들을 보호하려는 만큼 교육청에서 나라에서 제도적으로 교권을 보호해 주시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서울에 근무하는 9년차 교사 E씨는 "재작년 원치 않게 1학년 담임을 맡아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 병가를 내고 담임 교체까지 한 경험이 있다"며 "학부모 민원에 더해 친구를 때리고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에게 아무런 제재도 할 수 없는 교육 시스템, 친구를 괴롭히지 말라며 훈육보다는 애원에 가까운 호소를 하며 느끼는 무력감, 소수의 학생으로 인해 피해받는 선량한 다수의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이 교사는 "교육 현장의 문제점들은 공교육의 붕괴라고 불릴 만큼 심각하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맞아도 참아야 하는 교사의 이야기들이 더 이상 새롭지 않은 뉴스"라며 "우리는 지식 전달을 넘어서 전인교육을 하는 공교육을 책임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의 손으로 바꿔야 한다, 교사로서의 자긍심을 되찾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공교육정상화를 위한 전국 교사 일동'은 이날 성명을 통해 "현장의 교사들은 생명과 직결되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학부모의 무차별적 폭언 및 갑질에 정신은 병들어 가고 학생에 의한 신체적 폭력에는 어떤 대응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교권 침해의 문제는 곧 생존의 문제다, 교사 생존권 보장에 대한 교육부의 대처 방안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이날 집회에 앞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서울 청계천 인근에서 '전국 교사 긴급추모행동' 집회를 열었다. 전희영 전교조 위원장은 "학생의 폭력에도,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갑질에도, 관리자의 2차 가해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이 현실이 선생님을 떠나게 했다, 이 현실이 우리를 고통으로 밀어 넣고 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교단에 섰을 선생님이 왜 스스로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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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