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국민은 모르는 국회의원의 '별의별 특혜들'


# 260m의 행렬

때는 2007년 '민의의 정당' 국회의사당 앞. 검은색 고급차가 줄지어 서 있다. 몇몇 비서진은 우산을 받쳐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5분여가 흘렀을까. 멋들어진 양복을 차려입은 금배지들이 쏟아져 나온다. 기껏해야 가랑비 수준이지만, 비서진은 '행여 의원 나리가 젖을까' 법석을 떤다.

의사당에서 의원회관까진 260m. 고작 340걸음만 옮기면 닿을 만한 거리지만, 그 짧은 길을 걷는 금배지는 소수다. 대부분은 고급차에 올라타 의원회관 앞 '의원용 승하차 구역'까지 이동한다.

뭐, 놀랄 일도 아니다. 금배지가 '서민 코스프레'를 하는 건 선거를 치를 때뿐이니까. 따지고 보면 그럴 만한 이유도 있다. 금배지에겐 차량유지비·기름값이 공짜다. 물가가 치솟든 기름값이 오르든 그들과는 무관한 일이다. 국민의 혈세로 만들어진 지원금이 꼬박꼬박 지급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엔 더 황당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 1억원 넘는 지붕

관점을 다시 의원회관으로 돌려보자. 고급차에서 내린 금배지는 용케 비를 맞지 않고 의원회관으로 들어갔다. 의원회관 계단부터 출입문까지 이어지는 윗공간에 설치된 '캐노피(canopy·일종의 처마)' 덕이었다.

이 캐노피는 혈세 1억5000만원을 투입해 2007년에 새로 설치했다. 여야 금배지들이 툭하면 "비나 눈이 오면 미끄러질 위험이 있다"고 볼멘소리를 늘어놓자 국회 차원에서 만들었다.

결과도 못마땅하지만, 그 과정은 더 웃프다. 캐노피를 설치하는 과정을 담은 국회 운영위원회 '속기록'을 보면, 금배지가 자신들의 특권이나 특혜를 얼마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다.

"사전에 의원들에게 설문지를 돌려서 조사한 결과 76%의 찬성을 얻어 냈다(A의원)." "겨울을 한번 지내보니까 눈비가 올 때 의원님들이 내려오시면 바로 미끄러진다. 그래서 사고 방지 때문에 설치하려고 하는 것이다. 예산은 1억5000만원에서 많아봐야 1억8000만원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본다(B의원)".


이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는 2007년 우리가 취재수첩에 적어놨던 '금배지 적폐 목록' 중 하나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십수년 전의 일이니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희망 아닌 희망을 품을지 모른다. 과연 그럴까.

# 목욕탕 비화

"○○○ 의원을 사우나에서 만나 발가벗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 의원을 목욕탕에서 만났는데, 인사를 하지 않더라. 동료 의원들에게 물어보니 원래 그렇다던데…."

최근 여야 금배지들이 종편이나 유튜브 등지에 나와서 떠들어댄 이야기들이다. 국회 목욕탕이 뭐기에 이처럼 '시시껄렁한 비화'가 차고 넘치는 걸까.

의원회관 지하 1층에 만들어진 '금배지 전용' 목욕탕은 그 규모가 1140㎡(약 345평)에 이른다. 남성 의원용이 747㎡(약 226평), 여성 의원용이 393㎡(약 119평)다. 이 목욕탕을 만드는 데만 수억원이 넘는 혈세가 들어갔지만, 금배지들은 당연한 듯 공짜로 이용한다.

가파르게 치솟은 물가 탓에 목욕탕 가는 비용조차 아끼려는 서민이 적지 않고, 그 때문에 문을 닫는 목욕탕이 줄을 잇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배지의 '목욕탕 비화'는 그 자체로 병폐다.

# 자잘한 특혜들

어디 목욕탕뿐이겠는가. 금배지들이 누리는 자잘한 특혜는 일일이 늘어놓기 힘들 정도로 많다. 그중 몇개를 꼬집어 보자. 국회의원은 의원회관 내 병원·한의원·약국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출장비가 지급되니 KTX 열차나 선박·항공기를 이용하는 것도 무료다.

국민의 세금이란 걸 고맙게 생각해 값싼 자리에 앉는 것도 아니다. 항공기를 탈 때는 비즈니스석이 기본이다. 공항 귀빈실과 VIP 출입구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해외에 도착하면 재외공관의 영접도 받는다. 외유 논란이 끊이지 않는 해외 시찰도 제돈 들이지 않고 다녀온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볼펜 한자루, 복사용지 한장, 우편비와 전화요금도 공짜다. 심지어 자신들의 의정 활동을 알리기 위한 문자메시지까지 혈세로 보낸다. 모두 국민의 등에 매달려 누리는 특혜들이다.

이쯤 되면 십수년 전 '캐노피를 만들어 달라'며 생떼를 부렸던 그때 그 금배지나 숱한 특혜가 넘치는데도 '없애자'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지금의 금배지나 다를 게 없다.

# 쓰레기통 가는 법률안

그렇다고 금배지가 '입법기관'다운 것도 아니다. 21대 국회의 법안 통과율은 28.4%에 불과하다(6월 27일 기준). 2만2240개 발의안 중 6321개만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마저도 중복되는 법률안을 하나로 합친 대안반영 법안이 4032개다. 금배지들이 '거기서 거기인' 법률만 내놨다는 방증이다.

더 심각한 건 임기만료 후 폐기되는 법률안이 줄기는커녕 늘었다는 점이다. 15대 국회(1996년 5월 30일~2000년 5월 29일)에서 24.6%를 기록했던 임기만료로 인한 폐기율은 17대 국회(2004년 5월 30일~2008년 5월 29일·47.8%)에서 50%에 근접하더니, 20대 국회(2016년 5월 30일~2020년 5월 29일)에선 62.6%까지 치솟았다. 금배지의 임기가 끝난 직후 쓰레기통에 버려진 법률안이 10건 중 7건에 육박한다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챙길 몫은 분수에 넘치게 쓸어 담는다. 금배지가 1년 동안 받는 세비는 1억5426만원(2023년 기준)인데, 이게 다가 아니다. 의원 한명당 9명(인턴 1명 포함)의 보좌직원을 둘 수 있다. 이들이 받는 급여 총액은 5억여원이다. 합치면 금배지 1명의 의정 활동을 위해 지급되는 인건비만 6억원이 훌쩍 넘는다. 모두 혈세다. 실소가 절로 나올 만하다.

# 희망 아닌 희망

이처럼 21대 국회 역시 구태를 답습했다. 2021년 몇몇 금배지가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하긴 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거창하게 내세웠던 '상시국회'는 구현하지 못했고, 민생법안을 적기에 만들어내는 데도 실패했다. 우리가 '22대 총선 D-300: 금배지의 자잘한 특혜'를 기획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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