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금리 동결·반도체 바닥론 … 원화값 훈풍
달러당 원화값이 2개월 만에 1290원대로 올라선 것은 미국의 금리 동결 전망이 커졌기 때문이다. 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값이 1290원대에 진입한 것은 지난 3월 23일(1278.3원) 이후 79일 만이다.
앞서 캐나다와 호주 중앙은행이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 인상 행진을 이어가면서 다음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를 올릴 가능성까지 제기됐지만, 부진한 고용지표가 확인되자 금리 동결에 급격히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8일(현지시간) 미국 노동부는 지난주(5월 28~6월 3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26만1000건으로 2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김승현 NH선물 연구원은 "실업 청구 건수 발표로 시장은 6월 금리 동결에 베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정훈 하나은행 전문위원도 "원·달러 환율이 1290원대로 떨어진 것은 시장 참가자들의 6월 금리 동결에 대한 기대가 선반영된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이날 수출업체와 중공업체들의 달러 매도 물량도 원·달러 환율 하락에 힘을 보탰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부터 시장 전반에 불고 있는 반도체 업황 개선에 대한 기대도 원화 강세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원화 약세가 절정이던 지난 2~4월과 비교하면 최근 반도체 업황이 바닥을 찍었다는 기대감이 커졌고, 수출심리도 좋아지면서 원화 약세 압력이 크게 작아졌다"고 진단했다. 백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실망스러운 경제지표를 쏟아내 위안화 가치가 '포치(달러당 7위안)'가 무너지면서 원화에 일부 부정적인 영향을 줬지만, 지난주부터 중국 정부가 시장 달래기 조치를 발표하면서 원화가 다시 강세 압력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외국인의 증시 매수세도 원화 강세와 관련이 있다. 이날도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4800억원을, 코스닥시장에서 996억원을 순매수했다.
당분간 원화 강세 흐름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특히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시장의 바람대로 금리가 동결될 경우 원화값은 1270~1280원대로 올라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FOMC에서 긴축 사이클 종료를 시사하는 결정이 나올 때마다 원화값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다만 글로벌 제조업 경기가 반등하고 국내 경상수지가 크게 개선되지 않는 한 원화값이 1250원대까지 오르기는 어렵다는 게 외환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정부는 국내 경기와 관련해 '상저하고'로 예상하고 있지만 대외 여건을 감안할 때 국내 수출이 크게 개선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 전문위원은 "미국이 7월에도 금리를 동결하고 연말 얕은 경기 침체 영향으로 금리 인하 신호를 보낸다면 원화값이 1300원대로 급락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엔 재정환율은 8년 만에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엔화는 간밤 미국 고용지표 악화에도 불구하고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발언에 달러당 139엔 부근에서 움직이며 추세적 약세를 이어갔다. 이날 우에다 총재는 중의원 재무금융위원회에 출석해 "2% 인플레이션 목표를 안정적이고 꾸준히 달성하기까지 갈 길이 남았다"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통화 완화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발언하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우에다 총재는 지난 4월 취임 이후 통화정책 전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 오랜 시간과 증거가 필요하다며 아직까지는 비둘기파(완화적 통화정책 선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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