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에 직원 모두 떠났어요" 상흔 여전한 이태원 골목
#. 자원봉사자 60대 강모씨는 이태원 참사 이후 한 달째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지키고 있다. 당초 강씨는 지난 3일 해외로 출국해야 했으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봉사에만 전념하고 있다. 그는 "현장에 있었다면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안쓰러운 마음에 시작했다"며 "마음이 이끄는 데까지 조용히 봉사하고 싶다"고 했다. 11월 28일 오후 6시께에는 예고된 비 소식에 추모공간에 놓인 꽃 등 추모물품을 지키는 일을 했다. 강씨는 우산도 쓰지 않은 채 "꽃들이 비를 맞으면 상한다"며 비닐에 덮이지 않은 국화꽃을 챙겼다.
#. 참사 한 달이 지났지만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는 여전히 적막이 흘렀다. 역 중심으로 퇴근하는 직장인들은 분주했으나 바로 뒤편 참사가 일어난 골목 위 세계음식문화거리에는 인적이 뜸했다. 아직 반이 넘는 가게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몇몇 주점들은 노래를 튼 채 영업을 시작했으나 손님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부분 자영업자들은 말을 아꼈다. 한 상인은 "인터넷 댓글이 무섭다"고 토로했다. 사고 원인으로 상인들을 탓하는 댓글이 상처로 남은 것이다. 그는 "이제야 코로나19가 끝났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전 국민에게 충격을 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상처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에 현장을 돕기 위해 이태원을 찾았던 자원봉사자들은 아직 할 일이 남았다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태원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자영업자들도 그날이 남긴 상처에 또 다른 상처가 더해지면서 힘들어하고 있었다. 참사 한 달이 된 11월 28일 저녁 기자가 찾은 이태원의 모습이었다.
이태원에서 계속해서 삶을 살아야 하는 상인들은 심적·물적 고통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인근의 주점 직원 A씨(32)는 "당시 일했던 모든 직원들이 트라우마를 호소하며 그만둔 상태"라며 "매출은 70~80% 떨어졌고, 임대료 때문에 가게 문을 닫을 수도 없다"고 전했다.
11월 30일 서울시에 따르면 이태원 1·2동의 매출은 각각 61.7%, 20.3% 줄었고 유동인구는 각각 30.5%, 0.6% 줄었다.
날이 더 어두워지자 사고가 일어났던 골목을 홀로 환하게 비추고 있는 옷가게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가게 주인은 11월 2일 "애들 밥 한 끼라도 먹여야 한다"며 골목에 제사상을 차려 화제가 된 남인석씨(80)였다. 아직 트라우마에 시달린다는 남씨는 매일 오전 9시30분께 가게에 나와 밤 12시까지 조명을 켜놓는다고 한다. 남씨는 "골목이 너무 어두워 나라도 나와서 불을 밝혀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고 언급했다.
남씨 역시 생업이 녹록지 않다. 참사 이후 폴리스라인이 쳐지며 가게는 15일 동안 문을 닫았고, 이후로도 매출은 0원인데 임대료는 매달 500만원을 내고 있다.
사고가 커지게 된 원인으로 의심되는 해밀톤호텔의 가벽에는 추모 글을 담은 메모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한글은 물론 다양한 나라의 언어로 "사랑한다 아들아" "명복을 빕니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가벽 앞에서 천천히 포스트잇에 적힌 문구들을 읽던 대학생 장모씨(23)는 "TV로만 사고 현장을 보다가 직접 현장에 한번 오고 싶었다"며 "또래 친구들이 이렇게 죽었다는 게 믿기지 않고 명복을 빌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참을 서성이다 가벽 앞을 떠났다.
한편 정부와 지자체는 침체한 이태원 상권을 돕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중소벤처기업부는 11월 28일 용산구 지역 소상공인에게 최대 7000만원의 대출과 2억원의 보증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특별지원방안을 심의하고 확정했다. 서울시도 11월 24일 이태원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이태원 상권 회복자금' 100억원을 조성하고 업체당 최대 3000만원을 빌려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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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기자 다른기사보기